독일·프랑스, 반세기 만에 새 우호협정 체결

앙겔라 마르켈 독일 총리(오른쪽)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독일 서부 아헨에서 새 우호협정을 체결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1, 2차 세계대전 등으로 전통적인 앙숙이었던 독일과 프랑스가 반세기 만에 새 우호협정을 체결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포퓰리즘 득세, 러시아의 위협 등 안팎으로 위기에 직면한 유럽연합(EU)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22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에 따르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독일 서부 아헨에서 새로운 우호 협정에 서명했다. 유럽 현지 언론은 이번 협정을 체결식이 진행된 도시 아헨의 이름을 따 '아헨 협정'으로 부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번 협정을 통해 공통된 규정이 적용되는 '프랑스-독일 경제구역'을 설정하기로 했다. 양국 시장을 점차 통합한다는 목적이다. 양국은 경제전문가들로 구성된 독립적인 위원회도 만들기로 했다.

양국은 EU와 유엔에서 입장을 공동으로 발표하는 등 외교적 협력도 강화하기로 했다. 특히 독일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재 프랑스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전범국이었던 독일은 안보리에 진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특히 국방 부문에서는 유럽의 군사 능력을 발전시킨다는 명목 아래 공동 투자를 하기로 했다. 양국 공동의 국방·안보 위원회도 신설한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를 언급하자 양국 정상은 유럽이 스스로를 보호해야할 줄 알아야한다며 EU군 창설을 강력 지지해왔다.


현재 EU는 최근 몇 년간 반EU·민족주의 세력이 곳곳에서 득세하면서 뿌리부터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특히 동맹국인 미국이 EU와 거리를 두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하는 등 무력 위협을 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양국이 유럽에 닥친 여러 위협 속에서 (아헨 협정을 통해) 21세기에도 (과거의) 협력관계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아헨은 지난 수백 년간 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다퉜던 땅이다. 체결식이 진행된 이날(1월 22일) 역시 양국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우호협정인 엘리제 조약(1968년 1월 22일)을 체결한 날과 같다. 엘리제 조약은 현재의 통일된 EU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국의 새 우호 협정에는 이처럼 많은 상징이 담겼다고 BBC는 분석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아헨시청에서 열린 체결식에서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74년이 지나면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가치들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의 협력관계를 재정립하고 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포퓰리즘과 국가주의가 확산하는 시대"라면서 "EU를 탈퇴하는 국가(영국)가 최초로 나오기도 했다"면서 현재 EU가 직면한 위기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평화의 가치를 망각하고 거짓을 퍼트리는 자들은 과거 범죄(전쟁)의 공범"이라고 반EU세력을 비판했다.

한편, 독일과 프랑스 내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들은 아헨 협정에 대해 즉각 비판에 나섰다. 마린 르펜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 대표는 이번 협약이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을 독일에 양보하는 국가 반역행위"라고 비난했다.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의 알렉산더 가울란트도 "EU내 '슈퍼EU'를 만들려는 시도"라며 "독일과 프랑스가 협력관계를 강화할수록 양국이 EU 전체에서 소외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