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SW진흥법’ 국회 통과 서둘러야

팔순 나이에 초기치매 상태인 노모와 우울증 증세가 있는 누나하고 같이 사는 경력 15년의 유능한 프로그래머인 노총각 A 씨(40)는 모 공공기관 프로젝트로 지방에 4개월간 장기 출장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퇴직을 심각히 고려 중이다. 원격으로 프로그램 개발 자체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상황에서 발주처는 최소 3개월여의 온 사이트(상주)를 요구하고 있는데 병든 노모와 아픈 누나를 놔두고 혼자 지방에 장기간 근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원 30명을 둔 중소 SW 개발사 대표인 B 씨(53)는 최근 지자체가 발주한 정보화 프로젝트가 예상 시간보다 늦어지면서 속앓이를 톡톡히 하고 있다. 당초 과업대로 프로젝트가 완료됐음에도 발주처 담당자가 이번 프로젝트와 무관한 업무까지 추가개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사전에 예정되지 않은 추가 과업도 문제지만 별도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이같은 사례들은 지금 대한민국 SW 업계 종사자들이 겪고 있는 고충의 단면을 보여준다. 연초부터 반도체 쇼크로 올해 우리 경제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조선, 자동차에 이어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반도체 경기마저 흔들리면서 제조업 기반의 우리 경제 앞날에 불길한 구름이 뒤덮이고 있다.

이 같은 경제 난국에 대한 해답은 명쾌하다. 첨단 지식 산업을 육성해 이를 기반으로 제조업 경쟁력을 복원 내지 강화하고 더 나아가 첨단 지식서비스 국가로 발돋움해 제2의 경제부흥을 이루는 것이 바로 요체이다. 그 중심에는 SW산업이 있다는데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 SW가 미래를 이끌 핵심이라 한다면 그 시대의 가장 유능한 인재들이 앞다투어 몰려들게 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SW산업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SW가 핵심이라는 것을 누구나 동감하면서도 정작 SW 관련 일자리가 3D업종으로 치부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명확하다. SW산업이 우수한 인재를 끌어모으기에는 인프라가 너무 미비하기 때문이다. SW 업계 종사자들의 평균 근로시간은 그러잖아도 OECD 국가 중 연간 근로시간이 두 번째로 많은(2052시간)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많은 편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고사하고 주말이 있는 삶이라도 보장받고 싶다는게 SW종사자들의 희망이다. 그렇다고 SW 업계 종사자들의 대우는 좋은 편인가? 고용정보원이 집계한 우리나라 SW업계 종사자들의 평균 연봉 3500만 원대. 이는 미국(평균 1억 3천만원)과 비교해 1/3에 못 미친다. 경쟁국인 중국에서 IT 업종 종사자의 평균 급여는 13만 위안으로 2016년 이후 줄곧 전체 업종 1위를 지키고 있다.

SW를 육성하자는 슬로건은 역대 어느 정부나 내걸었지만, 실상은 울림 없는 메아리였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만 선진적으로 바뀌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여기에는 프로세스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의 인식 전환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SW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을 혁신하는 정책과 함께 산업을 진흥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 등이 서둘러 추진돼야 한다.

SW진흥법 개정안 통과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동안 SW 업계에서 줄기차기 요구했던 SW 원격지 개발허용, 과업 추가 시 적정 대가 지급, 상용 SW 활성화 등을 비롯해 SW기업과 인재양성 지원책 등이 새롭게 개정된 SW진흥법은 SW 업계의 최소한의 현실적 요구들이다. 지난해 12월에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SW진흥법은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하지만 현재까지 다른 이슈에 밀려 법안 통과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한다’는 거창한 구호를 떠나 갈수록 열악해지는 SW 업계의 생존을 위해서도 개정 SW진흥법은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이다. SW진흥법 개정은 SW 강국으로 가기 위한 첫발을 내딛는 초석이다.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