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직업’, 지금까지 없었던 ‘코미디 성공 포인트 5가지’

영화 ‘극한직업’이 기존 1000만 관객 돌파 영화보다 더 가파른 속도로 ‘극한기록’에 도전하면서 1400만 고지를 향하고 있다. 1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누적 관객 1283만 5974명을 기록했다.


코미디 영화 흥행 1위인 ‘7번방의 선물’(1281만명) 기록을 깨며 역대 코미디 영화 1위에 올랐고, 코미디 문법의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극한직업은 개봉 당시 또렷한 경쟁작이 없는 데다, 설 연휴라는 특수가 겹쳐 흥행을 견인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영화 자체에 스민 ‘콘텐츠의 신선한 미학’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게 평단과 대중의 공통된 분석이다.

코미디라는 장르를 가장 ‘코믹’하게 그리는 방법을 구현했다는 점에서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작품으로 인식됐고, 특별한 마케팅 없이 입소문 만으로 1000만 관객 달성을 손쉽게 이뤄냈다는 것이다.

배우 류승룡은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저절로 웃음이 났다”고 말했는데, 그의 말처럼 작품에 산재된 웃음 코드는 그대로 관객에게 전이됐다.



① 주인공은 없다…신스틸러의 대활약

간판 스타 류승룡(고반장)이 주인공 같지만, 작품에서 그의 활약은 n분의 1이다. 주연보다 장면에 각인되는 막강한 조연(신스틸러, scene stealer)들이 개성을 뽐내며 잊지 못할 한순간을 창조한다.

알고 보니 요리 천재인 막무가내 진선규(마형사), 남성 못지않은 패기를 자랑하는 이하늬(장형사), 나름 진지한 캐릭터 속에 ‘꿀잼’ 터트리는 이동휘(영호) 등 5인의 형사들은 늘 ‘같이’ 움직이며 각자 개성을 구축한다. 기존 코미디 영화에서 한두 명이 튀거나 집중되는 각인효과를 적절히 분배한 셈이다.

심지어 영화 속 찬조출연 격인 신하균(이무배)이나 오정세(테드 창), 장진희(선희) 같은 역할조차 극의 감칠맛을 극대화하는 캐릭터로 쓰인다.

② 최적의 웃음 타이밍…“연결의 재미 구축”

웃음 포인트가 그 상황에 살짝 빗나가면 코미디 영화는 그야말로 실패작이다. 류승룡이 잠복하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가 “맨날 반장만 하냐”는 아내의 핀잔이 극에 치달을 때, 딸이 문을 열고 “엄마, 나 반장됐어”하는 연결의 재미, 중요한 사건 현장을 보고하는 이동휘를 향해 “지금 바빠, 주문이 밀렸다”며 치킨 판매에 열을 올리는 형사들의 부조화 장면이 연출하는 상황 역전의 재미가 이 영화엔 쉴 틈 없이 펼쳐진다.

“우리가 치킨 판매하러 왔어? 사건에 집중해야지”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객 전화를 받은 류승룡이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하는 홍보 멘트를 쏟아내는 장면은 웃음의 포인트를 언제 어디에 삽입해야 하는지 단적으로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③ 스토리텔링의 미학…구수한 말맛의 향연

행동보다 말맛으로 재미를 안겨주는 코미디는 지금까지 드물었다. 장사가 너무 잘돼 종일 바빴던 일과를 토해내는 각자의 푸념은 듣는 것만으로도 배꼽을 낚아챈다. “양배추 수백 개 썰어내며 오른팔 저린 걸 네가 아느냐” 같은 식의 말맛은 한번 터진 입담에 쓰러진 관객을 다시 세우기 어려운 묘한 절정을 안겨준다.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이병헌 감독은 감칠맛 나는 말맛의 전작인 ‘완벽한 타인’의 형태적 요소를 그대로 가져왔다. 이 감독은 ‘완벽한 타인’의 각본가 배세영 작가가 쓴 시나리오를 각색했는데, 어떻게 하면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며 자신의 리듬에 맞춰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 절정의 요소들이 이 작품에 알알이 배어있는 셈이다.

④ 만화적 재미…가볍지만 멋있다

신하균(이무배) 조직원들이 ‘마약반’과 ‘강력반’ 대리전으로 싸우는 말다툼 장면에서 이들은 마치 스트리트파이터 같은 게임 주인공으로 나온다. 카메라 앵글샷도 만화 캐릭터처럼 잡았고 그들 역시 그런 표정과 행동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보기 힘든 살벌하지만 재미있는 표정들이 극의 재미를 한껏 높이는 요소로 등장한 것이다. 비오는 날 치킨 배달하는 장면이나, 지질할 것 같았던 형사들이 알고 보면 무공의 달인이라는 설정 역시 만화를 통해 얻는 통쾌함의 반전을 상징한다.


⑤ 감동의 거세…‘하나만 파는’ 선택과 집중

1000만 관객 돌파 코미디 영화의 대명사 ‘7번방의 선물’의 공식은 이 영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팀워크의 중요성, 수감 생활의 특별한 에피소드 등 비슷한 요소들이 중첩되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감동의 유무다.

‘7번방…’이 재미로 시작해 감동으로 끝나는 종합선물세트 공식의 표본이었다면, ‘극한직업’은 이 같은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재미로 시작해 재미로 끝나는 ‘한 곳만 파는’ 일방통행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살이에 웃음보따리 한 아름 안기는 이 영화의 전략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의 유일한 감동 포인트는 류승룡이 던진 이 한마디였을 뿐이다. “소상공인은 목숨 걸고 장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