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 재개발 구역 수십개로 쪼갠 박원순 시장, 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해 3월 서울 중구 PJ호텔에서 열린 '2020 다시·세운 프로젝트' 2단계 착수 발표회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박원순 서울시장이 을지로 공구상가와 ‘노포’(老鋪·대를 이은 유명가게) 보존을 위해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 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확산하는 가운데 서울시가 2014년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의 문제점이 재조명되고 있다.
　
토지주의 동의 없이 사업구역을 수십 개로 나눴는데 서울시 산하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시행한 세운4구역만 ‘통합개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지정 당시 세운 2·3·4·5구역 모두 약 3만3000㎡ 규모 단일 부지 통합개발이 추진됐다. 하지만 박 시장이 부임한 2011년 이 계획은 전면 취소됐고 3년 뒤 변경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이 공개됐다.
　
이 계획에 따르면 종묘의 경관을 보호하기 위해 층고 제한을 강화했고 특히 통합개발이 추진되던 재개발구역을 여러 중소형 사업지로 쪼갰다. 2구역은 35개, 3구역은 10개, 5구역은 11개, 인쇄골목이 위치한 충무로 일대 6-1~4구역은 최소 9개에서 최대 50개 중소형 부지로 분할했다.
　
이로 인해 구역별 대규모 복합개발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수익성 악화를 우려한 대형 건설사 상당수가 사업에서 이탈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세운2구역은 개별 사업지를 약 300평(약 992㎡) 정도로 쪼갰는데 이러면 신축건물에 주차장도 만들기 어렵다”며 “사실상 재개발을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재개발 지연으로 부담이 커진 토지주와 민간 시행사들은 대책을 마련했다. 이번에 을지면옥 등 노포 보존문제로 논란이 된 세운3구역도 지주간 협의를 거쳐 10개 중소형 부지를 3개(3-1·4·5, 3-2·6·7, 3-3·8·9)로 다시 합쳐 개발을 진행 중이다. 다른 구역들도 이처럼 통합부지를 확보해야 재개발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시가 2014년 발표한 세운제정비촉진계획 구역별 사업지 현황. /자료=서울시

이런 상황에서 SH공사가 시행사로 참여한 세운4구역만 3만3262㎡ 부지 통합개발 계획이 유지됐다. 종묘 바로 앞인 이곳에 2023년까지 최고 18층 높이의 호텔·오피스텔·오피스 9개 동이 연면적 30만㎡ 규모로 들어선다.
　
이에 서울시 관계자는 “당시 사업이 상당부분 진척됐고 공공기관이 시행사로 참여한 만큼 매몰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SH공사가 세운4구역 개발을 위해 투입한 비용은 약 1500억원 규모로 추정된다. SH공사 관계자는 “기존 개발계획 발표 시 사용한 설계비와 상권침체에 따른 영업보상비, 상인 임시 이주보상비 등이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구역들도 2006년 이전부터 재개발 논의가 진행됐고 토지주와 시행사가 부담한 매몰비용(세운3구역 1400억원, 세운5구역 1700억원 추정)을 고려할 때 서울시가 명확한 기준 없이 구역별 통합개발을 철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시장이 전임자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4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발표에 앞서 전문가 공청회를 거쳤고 토지주들의 의견을 수렴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일부 토지주들은 “토지분할문제는 사전에 전혀 협의하지 않은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반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 시장이 노포 보존 등을 이유로 어렵게 사업시행인가를 완료한 세운3구역 재개발 사업에 또다시 제동을 걸자 토지주들은 강력 반발한다.
　
세운3구역 한 토지주는 “박 시장은 본인이 직접 변경한 2014년 재개발 계획을 법적 근거도 없는 생활유산을 근거로 또 뒤집으려 한다”며 “사업지연에 따른 피해가 막심한 만큼 비용을 보상받기 위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감사원 특별감사도 청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