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 화재 원인 수개월째 '설왕설래'…관련 업계 '냉가슴' 앓아

LS산전 관계자가 MW(메가와트)급 ESS용 PCS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LS산전 제공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 에너지저장장치(ESS) 업계가 뒤숭숭하다. 수개월째 ESS 화재 원인을 놓고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자칫 미래 먹거리 시장이 위축되지 않을까 속앓이를 하고 있다.

1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대학교수와 기술인력 등 민관 전문가 19명으로 구성된 사고조사위원회가 ESS 화재 원인 조사를 다음달 말까지 완료할 예정이다. 2017년 8월부터 올해까지 총 21건의 ESS 화재가 발생했으나 아직 원인은 오리무중이다.


ESS는 생산한 전력을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간에 내보내는 장치로, 배터리 등 전력저장원과 전력변환장치(PCS), 전력관리시스템(BMS) 등이 합쳐졌다.

ESS 사업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강화 정책에 힘입어 단기간 내 급성장했다. 국내에서 배터리는 삼성SDI와 LG화학이, PCS는 LS산전이, 시스템통합은 효성중공업이 주로 생산한다.

화재 원인은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각종 설이 제기되는 중이다. 특히 최근 '에너지기술평가원' 회의 보고서가 유출돼 업계가 한바탕 들썩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전기적 충격 현상'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배터리 운용 시스템 문제를 화재의 유력한 원인으로 결론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가기술표준원 전기통신제품안전과 관계자는 "해당 보고서는 연구원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배터리뿐 아니라 PCS, 컴포넌트, 전력설비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종합적으로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매출감소와 시장 위축, 제품 신뢰도 하락을 감수하면서도 이를 드러내지도 못하고 속앓이 중이다. ESS 화재를 입밖에 꺼낼수록 자사의 사업의 리스크가 부각되는 만큼 정부 '처분'만 기다리는 형국이다.

LG화학, 삼성SDI 등 배터리 제조업체들은 화재가 배터리 자체의 문제인지 시스템 설계나 설치·운영의 문제인지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가동 중단 조치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산정되지 않았다"며 "배터리는 기본적으로 불이 날 수 있는 부품이지만 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도 매우 많아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LS산전은 화재 원인이 PCS와는 관련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LS산전 관계자는 "아직 화재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서 조심스럽다"면서도 배터리실과 PCS 중앙관제 장치가 따로 있는데 배터리에서 불이 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LS산전은 2003년 계열 분리 이후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액(2조485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전략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스마트에너지 사업이 흑자 전환에 성공한 것이 실적을 견인했는데, 전사 차원에서 신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는 ESS 사업이 타격을 입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해 말 100kW급 소규모 태양광 발전에 적합한 일체형 ESS를 출시한 LG전자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ESS 사업의 비중이 적은 편이지만 리스크가 지속되는 상황"이라며 "업계 전체가 명확한 원인 규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전기요금 특례와 각종 보조금으로 ESS 수요를 늘려온 정부가 정작 화재와 관련해선 늑장대처로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ESS 화재에 대한 책임 소재를 떠나 ESS 시장 전반이 축소되고 성장동력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