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처럼' 60시간 열차이동 택한 김정은, 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제2차 북미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에서 출발했다고 노동신문이 24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2019.2.24/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23일 오후 평양을 출발했다. 비행기가 아닌 장장 60여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열차 이동을 택한 것은 안전 문제와 함께 김일성, 김정일 등 선대부터 이어져온 열차 이동의 전통, 북중 동맹 과시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5시간' 항공편 아닌 '60시간' 열차 이동 선택= 김 위원장이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23일 오후 평양역에서 전용 열차를 타고 출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4일 보도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과 함께 김영철·리수용·김평해·오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이 동행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서 러시아 타스통신은 이날 오후 5시 김 위원장을 태운 특별열차가 평양을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인 NK뉴스 등은 김 위원장의 열차가 한국시간으로 밤 10시20분(베이징 시간 9시20분) 경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조중우의교를 통과해 중국 영토로 들어섰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평양에서 중국을 관통해 베트남 동당역까지는 열차로, 동당역에서 회담이 열리는 하노이까지는 승용차로 각각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리로는 약 4500km, 60여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경로다. 약 5시간이면 가능한 항공로와 달리 지나치게 이동시간이 길다. 지난해 베이징 등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과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항공편으로 이동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열차 이동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간주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제2차 북미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평양에서 출발했다고 노동신문이 24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2019.2.24/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참매 1호' 장거리 비행 제약…안전 문제 우선 고려= 그럼에도 열차 이동을 택한 것은 우선 안전 문제를 고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벌써 두 차례나 중국 방문에 특별열차를 동원했다. 과거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교 활동에 열차를 이용하면서 안전성 문제에서 오랜 기간 검증이 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특별열차는 방탄·방폭 기능은 물론, 82㎜ 박격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고, 위급시 사용할 수 있도록 방탄 차량도 싣고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전 문제로 열차 속도도 최대 시속 60㎞ 정도로만 운행한다.

이에 반해 김 위원장의 전용기인 '참매 1호'는 장거리 비행에 제약이 있다.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때도 중국 리커창 총리의 전용기를 빌려 갔었다. 당시 북한 내부에서는 김 위원장이 중국 항공기를 빌린 것에 대해 이견이 상당했다고 한다. 최고존엄으로 불리는 김 위원장의 특별한 국내 위상을 생각했을 때 당연한 반발이었다. 이번에도 중국에서 비행기를 빌리기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항공기는 이륙 이후 쉽게 운항 루트가 노출된다는 점도 김 위원장이 전용기를 피하는 이유로 지적된다. 실제로 1차 북미 정상회담 당시 항공 운항 추적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김 위원장의 동선이 실시간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지난 23일 새벽 중국 단중 지역에서 바라본 조중우의교. 이 다리는 북한 신의주 지역과 중국 단둥 지역을 이어준다./AFPBBNews=뉴스1

◇3대에 걸친 '열차 외교' 부각…김정은 우상화 효과= 김 위원장의 정권 승계 정통성을 과시함으로써 내부 결속을 강화하는 의미도 담겼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일성 주석은 1958년과 1964년 두 차례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평양에서 중국으로 열차로 이동한 뒤 중국에서 항공기를 타고 베트남으로 갔다.

김정일 위원장도 열차를 통해 중국의 남순강화(南巡講話) 루트를 다녀오고, 2002년 러시아 극동지역 방문 당시 평양에서 모스크바까지 왕복 2만여㎞를 24일에 걸쳐 오고가는 등 '장거리 열차 외교'는 북한 최고지도자의 상징처럼 돼 있다. 김 위원장의 외교 행보를 선대와 역사와 결부시킴으로써, 우상화를 강화하는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

이 밖에 미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북중 관계를 과시하는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 2월까지는 춘제 연휴 여파로 중국 내에서 교통체증이 심한 시기다. 김 위원장의 장기 열차 이동을 위해선 중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열차를 타고 오가는 길에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정상회담이나 중국 내 주요 지역을 돌러 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동맹을 과시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