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연예인 공화국' 무너뜨릴까

'버닝썬 게이트'로 논란의 중심에 선 연예인들. 차태현과 김준호는 '정준영 카톡방'을 조사하던 중 상습적으로 내기 도박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승리, 정준영, 김준호, 차태현, 최종훈, 이종현./사진=머니투데이DB, 뉴스1

'버닝썬 게이트'가 연예인 공화국을 흔들고 있다. 최근 연예인들이 연이어 논란의 중심에 서며 대중의 배신감이 극에 달하는 분위기다. 연예인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물론 연예인 공화국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연예계 최대 화두는 '버닝썬 게이트'다. 단순 폭행으로 시작된 버닝썬 사건은 순식간에 의혹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성 접대, 마약, 경찰 유착, 몰카 등 의혹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심엔 남자 연예인들이 있었다. 성 접대 혐의를 받는 승리를 시작으로 그의 동료 연예인들이 경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정준영의 불법 영상 촬영 및 유포 혐의, 최종훈의 뇌물공여 혐의 등이 포착됐다.

경찰이 정준영의 휴대폰을 조사한 결과, 차태현과 김준호가 내기 골프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논란이 일자 두 사람은 모든 방송에서 하차를 선언했다.

유명 연예인들의 '민낯'이 드러나자 대중은 실망감과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성공한 사업가 이미지를 쌓았던 승리, 첫사랑과 결혼한 다둥이 아빠 이미지로 사랑받았던 차태현 등이 잇따라 논란을 일으키자 충격에 빠진 것이다.

한 누리꾼은 "연예인 공화국에 살고 있단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요즘이다. 뉴스가 온통 연예인 이야기다. 이걸 보고 충격 받는 나도 미련하게 느껴진다"고 자책했다.

최근 배우 신민아가 '패션 아이템'임을 강조하는 미세먼지 마스크 광고가 나와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해당 마스크 광고./사진=에티카 광고 캡처

우리나라의 '연예인 공화국' 면모는 광고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자동차·보험·화장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연예인이 광고를 '점령'하고 있다.


최근에는 '생존 아이템'인 미세먼지 마스크 광고에 연예인이 등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달 28일 한 마스크 브랜드가 여자 연예인이 등장하는 광고를 공개했다. 이 광고는 미세먼지 마스크의 기능 보다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해 비판 받았다.

이 광고를 본 누리꾼들은 "무슨 미세먼지 마스크까지 연예인이 광고를 하냐", "얼굴도 다 가리는 제품에 연예인 모델을 발탁한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영화관에서 광고 보고 뭔가 싶었다", "연예인 공화국이라는 증거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연예인의 광고료로 인해 제품 가격이 인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가의 광고 출연료가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 강모씨(26)는 "연예인 써서 잘 팔리면 다른 업체도 다 따라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마스크 가격이 전반적으로 오르게 될 거다. 연예인 쓸 돈 있으면 가격이나 내렸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직장인 정모씨(28)는 "마스크를 비롯한 생필품 광고를 왜 연예인이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생리대도 마찬가지다. 기능에 초점을 맞춰야 할 광고에 여자 연예인이 흰 바지 입고 등장해 예쁜 모습만 보여준다. 볼 때마다 어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소비자 불만이 늘고 있지만 기업은 광고 효과를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내 한 중견기업의 마케터는 "광고 효과를 조사해보면 연예인 없이 광고한 제품은 인지도가 아주 낮게 나온다. 그렇다 보니 회사 입장에선 당연히 연예인을 모델로 쓸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룹 워너원 출신 강다니엘이 지난해 중국팬으로부터 받은 생일 조공./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조공 문화'도 연예인 공화국을 공고히 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공은 팬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보내는 행위다. '서포트'라고도 불린다. 가장 기본적인 조공은 먹거리 선물이다. 조공 문화가 생겨나던 초기엔 드라마, 음악방송 등 촬영 장소에 팬들이 간식이나 도시락을 보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지금은 연예인·스태프 등 수백명을 위한 '밥차'가 흔한 조공이 됐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응원한다는 취지였던 조공은 팬덤 간 선물 경쟁으로 번졌다. '억' 소리 나는 조공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생일 조공'의 경우 그 규모가 수억원대에 이르기도 한다. 그룹 워너원 출신 강다니엘은 지난해 12월10일 팬들에게 2억원 상당의 생일 서포트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생일 서포트 품목에는 명품 시계, 의류, 음향 장비 등이 포함됐다.

문화사회연구소 관계자는 "연예인 조공은 수년 전부터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 사회는 타자와 비교하며 애정 실천의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조공 문화에 이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공 문화가 커지며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대학생 김모씨(22)는 "기념일마다 과도한 선물을 받는 연예인들을 보면 '연예인이 벼슬이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팬들의 호의라고 해도 '조공'이나 '바친다'는 표현은 정말 기이하다"고 전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과거와 달리 대중들은 '연예인 공화국'임을 자각하고 있다. 직장인 이모씨(33)는 "연예계 공화국 신흥귀족 행태가 만연하다. 일반인 보다 비도덕적인 연예인이 많은 것 같은데 공인이란 이유로 비호받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꼬집었다.

직장인 강모씨(27)도 "길을 걷다보면 사방이 연예인이다. 작은 물건을 사더라도 연예인을 꼭 마주하게 된다"며 "방송사들은 연예인도 모자라 연예인 가족에 매니저, 지인까지 보여주고 여행도 보내준다. 정말 지겹다. 이 기회에 연예인 공화국 무너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예계의 병폐가 드러나자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도 등장했다. 한 청원인은 "나라가 연예인 공화국이 돼가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연예인 돼서 골프 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이럴 거면 헌법도 수정해라. '연예인의, 연예인에 의한, 연예인을 위한 나라' 아니냐"고 날을 세웠다.

'연예인 공화국' 타파를 위해선 연예인 소비부터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직장인 김모씨(30)는 "우리나라가 연예인 공화국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연예인이 돈이 돼서다. 그러니 대중이 소비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취업준비생 서하영씨(25)도 "연예인을 너무 좋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만들어진 이미지다. 그들이 뭐라고 돈 쓰고 감정 쏟고 우러러보는가. 그냥 보고 즐기는 정도로만 대해야 한다"고 전했다.

김성수 문화 평론가는 "버닝썬 게이트는 연예계의 취약한 이익구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본다. '방송이든 광고든 '돈 되는 연예인'이라면 다 쓰는데 정작 소비자인 대중의 주권은 약하다"며 "최근에 승리가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는데 이는 사실상 팬과 대중이 승리를 '퇴출' 시킨 것이다. 이처럼 소비자 주권이 커지는 변화가 계속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