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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기 건축가 “도시 재생 ‘사람’에게 투자”..."젊은 인구 유지하는 정책적 뒷받침도 필요"

더리더
  • 임윤희 기자
  • 2019.04.12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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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을 바꾸는 건축과 사람들-운생동 건축사무소 장윤규 대표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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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벽원 전경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지역을 바꾸는 건축’이라는 주제로 건축가들과 대담을 펼친다. 장 대표는 특색 있고 자연스러운 도시 건축으로 많은 성공 사례를 만들어낸 건축가다. 국내 건축가 중 ‘세계건축상’을 수상한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다. 장 대표의 시선으로 변화하는 지역의 모습을 건축을 통해 재조명한다.
그가 두 번째로 만난 주인공은 이충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다. 이 교수는 서울시 명예시장, 서울시건축정책위원, 목포도시재생 총괄 코디와 세운상가 총괄 MP(Master Planer), 그리고 가락시장 현대화 사업 MP 등을 맡고 있다. 전국의 굵직한 도시재생 사업은 대부분 그의 손을 거의 거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에 서울시장 표창,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한국 건축 베스트 7에 손꼽히는 작품도 다수 배출했다. 3월 19일 오후, 서울시립대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에서 대담이 진행됐다.

“시골 고향집은 한옥”,“건축가의 감성을 일깨워”

장윤규:
건축가의 길을 가게 되는 동기는 저마다 다른데 교수님이 시작한 이유가 궁금하다.
이충기: 고등학교 때까지 수학을 많이 싫어했다. 대입 때 수학을 거의 하지 않을 것 같은 전공이라고 생각하고 건축과를 선택했는데 들어가보니 건축구조 과목에서 생각보다 수학을 많이 필요로 하더라.(웃음) 나중에 졸업 후 실무하고 건축사 시험 공부를 하다 보니 되레 수학 기반인 ‘구조과목’이 더 쉽고 점수가 잘 나오더라. 수학을 싫어한 것은 내가 공부를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다행히도 막상 건축가가 되고 보니 나와 정말 잘 맞았다. 어린 시절 시골 한옥에서 자란 감성과 맞닿아 있었다. 그 당시 동네의 30여 가구 모든 집이 다 내 놀이터였다. 시골 동네의 모든 집 구조를 30년이 지난 뒤에도 평면도를 정확하게 그려낼 정도로 공간이 몸으로 기억되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한옥과 시골 마을의 공간 체험은 건축하는 나에게 좋은 자양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충기 교수(왼쪽)의 연구실을 찾은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이충기 교수(왼쪽)의 연구실을 찾은 장윤규 운생동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장윤규: 우리 어릴 때와는 달리 요즘 아이들은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만 알고 있다. 북촌에 있는 한옥을 테마공원처럼 느끼더라.
이충기: 과거 시골에서 자랄 때의 감성이 지금 설계할 때도 그대로 작동하는 걸 보면 요즘 아이들이 그런 걸 모르고 성장해서 아쉽다. 자연현상 중의 하나인 비와 집의 관계를 예로 들자. 한옥에서는 외부와 오픈되어 통하는 대청마루에서 비가 오면 빗물이 처마에서 떨어지는 모습과 낙숫물 소리도 보고 느낀다. 요즈음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마도 없고 외부와 단절된 아파트에 살면서 포장된 도로로 차 타고 다니니까 비가 주는 감성과 즐거움조차 느끼지 못한다.

‘이화동 프로젝트’, 가치를 살리는 노력 필요


장윤규: 그런 감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아마 이화동 프로젝트에 능동적인 참여로 이어진 거 같다.
이충기: 성곽 아래쪽에서 이화장 위쪽 지역을 중심으로 아파트 추진개발위원회까지 생기자 재개발을 막아보자고 최홍규 쇳대박물관장으로부터 도움 요청이 왔다. 그를 돕는다는 마음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재개발 구역에서 기존 건물을 헐고 새로 짓기도 그렇고 해서 지역과 마을 풍경에 잘 녹아들도록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지역재생, 리모델링의 좋은 본보기로 알려졌고 이화동 마을 전체의 변화를 찍고 있던 노경 사진가의 홈페이지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마을 전체가 역사를 간직한 박물관으로 바뀌자 서울시는 지역 주민의 의견을 반영하여 지난해 10월 이화동을 재개발지구에서 직권 해제했다. 이화동 일대를 특색 있는 성곽마을 주거지로 개선한다는 것이 서울시의 계획이다. 결국 이화동은 ‘성곽마을 관리형 주거환경 개선사업 정비’ 사업을 통해 또 다른 모습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장윤규: 교회 건축을 많이 하셨다. 개인적으로는 한 번도 못해본 작업이다.(웃음) 비결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충기: 운이 좋았다. 우연한 기회에 군산의 주택 설계를 맡은 것이 나의 건축저널 데뷔작이었는데 그 건축주와의 인연으로 가나안 교회의 설계를 맡게 됐다. 그전까지 교회 설계는 해본 적이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는 좁은 계단으로 1층과 2,3층을 연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교회는 예배 시간에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렸다가 빠져나가기 때문에 동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단을 두 배나 넓은 새로운 개념의 교회를 제안했고 성공적 평가를 받았다. 그 작품으로 건축문화 대상을 받고 나서 교회 전문가로 소개되었다. 교회는 매우 작은 세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목사님들이 알음알음 소개해주는 덕에 교회 설계를 많이 했다.
▲이충기 교수의 첫 교회 설계작. 가나안 교회/사진=이충기 제공
▲이충기 교수의 첫 교회 설계작. 가나안 교회/사진=이충기 제공

장윤규: 공공 건축에서는 사적인 공간이 공적으로 변하는 포인트가 무척 중요하다. 로마시대에도 마을 지도를 그릴 때 지금의 교회 역할과 비교되는 판테온(로마의 모든 신에게 바치는 신전)을 길에 포함해서 광장처럼 그렸다. 교회나 학교는 공공건축으로 재편해서 열린 광장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충기: 교회와 학교가 지역사회에 공공적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다. 사람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지역사회에의 중심으로 커뮤니티 공간은 물론 오픈 스페이스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교회는 특히 사적 영역에서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어 열린 공간 역할을 많이 하게 된다. 나의 교회 설계는 특히 열린 공간의 특성을 많이 내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청년이 도시로 스며들어 도시재생 견인해야…정책은 뒷받침


장윤규: 대학 캠퍼스도 개념이 바뀌고 있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활동하는 공간이지만 서울시립대의 경우 시민과 공간을 함께 사용한다거나, 세운상가 보일러실을 활용해 서울시립대 세운캠퍼스로 쓰고 있는 것도 교수님 작업과 다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이충기: 미국의 경우 도심 곳곳에 대학 건물이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캠퍼스의 영역을 별도로 구분해 모든 건물이 캠퍼스 안에 있는 게 당연하고 익숙해져 있다. 캠퍼스 울타리가 없어야 지역으로 스며들어 소통과 소비가 확산되고 공유 캠퍼스로서의 역할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다세대주택을 매입해서 기숙사 대신 거주하게 하고 건물을 세 내어 그곳에서 수업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다니면서 지역이 활성화되고, 주민들은 학교 안으로 들어가 공원 같은 시설을 즐기는 것이다. 주민과 공유를 통해 캠퍼스가 지역에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캠퍼스 타운이다. 그것이 상생이고 지역 쇠퇴를 막는 일이다. 앞으로는 그런 모델이 더욱 필요하다. 노인이 사는 동네에 청년이 들어오고, 지역이 밝아지는 역할을 학교가 해야 한다. 이것이 캠퍼스 타운 개념의 도시재생이다. 서울시는 침체된 대학가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이미 2017년 5월부터 캠퍼스 타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학이 가진 인적·물적·지적 자원과 체계적인 공공지원과 지역협력이라는 세 가지를 통해 지역 활성화와 청년 문제 해결을 도모하고 있다.

장윤규: 재생을 잘못하면 예전처럼 건물을 짓는 방식으로 가는 것 같다. 현실적인 마을 공간에 프로그램과 정책을 엮어가는 게 바람직한 방법 같다.
이충기: 그렇다. 아울러 학생들이 태어난 지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정책적으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해당 지역 출신 학생들이 지역 대학에 진학할 경우 등록금을 파격적으로 낮춰 지역 인재를 서울로 뺏기지 않게 하여 지역의 젊은 인구를 유지하는 정책이나 프로그램도 중요하다.

서울미래유산 서울시립대 경농관 리모델링 “모두 가치에 공감했다”


장윤규: 이화동 프로젝트도 자발적으로 들어가서 레퍼런스를 하나 만들었고 시립대학교도 마찬가지로 근대 건물을 자발적으로 개입해서 리모델링한 것으로 안다. 마을 건축가로서 활동이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 어떤 생각으로 참여하게 되었나.
이충기: 2012년 어느날 학교 본부에서 경농관 공사에 대한 자문을 해달라고 해서 회의에 참석했다. 이미 설계도 끝나고 시공업체 역시 정해진 상황이었다. 샌드위치 패널 지붕에 철골보강 트러스라니! 건물의 고유한 가치가 너무 훼손되는 것 같아 건축가의 오지랖이 작동했다. 100년 된 건물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몇 가지 자료를 가지고 총장을 찾아갔다. ‘몇 년후(작년 2018년이 100주년)면 설립 100주년이 되는데 이 건물이 우리 대학의 100년을 상징하는 건물이 되도록 하자’고 설득했다. 총장의 승인을 받고 경농관 프로젝트의 전권을 받아 진두지휘했다. 시공사는 이미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도면을 작성할 시간이 없어 스케치를 해가며 진행했다. 리모델링을 위해 일부를 뜯어 보니까 원형을 대부분 알 수 있었다.

원래 일제강점기에는 벽체나 지붕에 단열재가 없고 목조 트러스에 매단 천장이 있었다. 시멘트 벽돌은 없었고, 적벽돌을 사용하였는데 뜯어 보니 이후에 보수하거나 고친 흔적이 나왔다. 외장 벽돌은 상태가 괜찮아서 안쪽으로 단열을 하고 교무실 복도의 칸막이 벽돌은 몰탈을 벗겨 거친 느낌을 살렸다. 천장을 뜯어 보니 트러스가 생각보다 멋있고 상태가 좋았다. 일부 트러스는 컬러를 맞춰서 보수 보강했다.
▲이충기 교수가 예전 벽돌이 고스란히 드러난 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충기 교수가 예전 벽돌이 고스란히 드러난 벽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윤규: 건축의 속살을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벽돌이라는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면서 기억의 재생으로 탄생한 건축 박물관 같은 느낌이다.
이충기: 힘든 작업이었다. 작업하는 사람들도 쉬운 작업은 아니었을 거다. 스프링클러 배관을 목조 트러스에 묶으려고 하기에 보기가 싫어서 어려운 작업임에도 다시 바꾸라고 했었다. 나중에 현장에 반장이 찾아와 나의 생각을 지지한다고 해서 큰 힘이 됐다. 막바지에는 다들 그 가치를 이어갈 수 있는 작업을 좋아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졌다고 해서 일제의 잔재로 보는 것은 곤란하다. 모두 한국 사람들이 지은 것 아닌가. 그 일을 하던 우리 한국 사람들의 땀과 노력이 묻어 있다고 생각한다. 목재로 지붕을 위한 삼각형 트러스를 올리는 것은 당시의 보편화된 기술이었다. 벽돌과 목재는 시간이 지나면서 숙성된다. 시간의 흔적과 기억이 담기는 것이다. 그것이 축적되어 리모델링하는 순간에 가치를 드러낸다. 과거의 속살이 드러나 보잘것없는 현재를 한층 더 영광스럽게 만든다.

“도시재생은 주민 주도로 자생적이어야”


장윤규: 많은 소도시가 쇠퇴하는 과정에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그런데 도시재생을 관이 주도하고 있어서 우려된다. 관은 서포트 역할만 하면 되는데 관료 시스템이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거 같다. 이런 과정 속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보나.
이충기: 도시재생은 바텀업으로 자생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국가 사업으로 골고루 나눠주다 보니 재개발 사업과 비슷해졌다. 돈이 국가에서 나오니 일종의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된다. 주민들은 내용도 모르고 지자체의 행정을 따라가고 있다. 도시재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 참여다. 재생은 크게 보면 내용적 재생과 물리적 재생이 있다. 국가에서도 두 가지를 다 요구하긴 한다. 그러나 이미 인구 20~30만인 도시의 발달 모습을 보면 전부 다 시외 근교에 아파트를 지어 이주시키고 빈 구도심을 남겨둔다. 구도심에는 사람이 없게 된다. 주거지를 재생하려면 빈 집을 수리하고 돌아와 장사를 하고 그곳에서 먹고살아야 하는데 이미 사람이 많이 떠난 구도심 재생은 무척 어렵다. 대부분 지방 중소 도시의 문제가 다 거기에 있다.
서울의 경우 을지로 쪽과 내가 MP를 맡았던 세운상가도 대부분 이주하고 주민이 많이 없었던 지역이다. 재생은 한꺼번에 짧은 시간에 안 된다. 지금은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서서히 들어오고 있다. 도시재생은 10년 정도 긴 호흡으로 천천히 해야 하는데 국가나 지자체는 2~3년 안에 다 하려고 하기 때문에 어렵다. 주민들은 먹고살 수 있어야 돌아온다.
도시재생을 하면 부동산 가격은 상승한다. 그러면 돈 있는 사람이 건물을 사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런 것도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사람’에 투자해야 한다. 뜻이 있는 사람에게 지원해야 한다.
정부의 도시재생에 대한 정책 방향은 맞지만 임기 안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좋은 가치도 사라진다. 그간 도시재생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행정이나 주민들도 갑자기 닥친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한 도시나 마을이 생성되고 정착하려면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도시재생이라면 최소한 그 반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도시재생의 근본적 문제는 인구 감소”

장윤규: 한때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같은 랜드마크를 만들어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리려는 시도가 유행했었다. 도시마다 여건이 다르고 재생 방식도 다른데 모두 유사한 방식을 적용하려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장윤규 대표가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장윤규 대표가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충기: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도 단시간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필요하다. 일본만 해도 우리보다 앞서 쇠퇴한 도시재생을 위해 그런 방식을 채택했다. 도쿄에 모리타운이나 미드타운 같은 랜드마크를 집중 건설해 재생을 도모했다. 민간이 투자하고 지자체는 도와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관이 투자하고 민간은 조합원으로 들어간다. 지분을 쪼개다 보니 사업이 잘 안 된다. 또 지역에는 자본이 가지 않는다.
대기업이 일종의 기부 성격을 띠고 지역 재생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지역은 이런 기업을 유치하는 방식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지만 도시재생에서 더 근본적인 문제는 줄어드는 인구다. 인구가 줄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다. 중3 학생이 이미 대학 정원의 반으로 줄었다.

우리 세대와 우리 위 세대는 개발 시대에 태어나 부동산 광풍시대에 살면서 땅값, 집값이 올랐다. 월급만 받아 생활하면 그런 돈을 벌 수 없는데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돈을 번 셈이다. 운이 좋았다. 노동을 하고 월급만 받아도 먹고사는 안정적인 사회가 돼야 하는데 우리 자식 세대는 참담하다. 부모세대가 돈이 되는 것은 모두 다 개발해서 자식세대에는 할 것이 없으니 부모의 경제력에 자식이 기대고 있단 말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도시재생의 효과를 기대하려면 인구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본다. 지역에는 사람이 없다.

내가 MP를 맡은 목포 도시재생도 마찬가지 문제에 봉착해 있다. 목포만 해도 대표적인 고령 도시다. 지역 구도심은 다 노인뿐이다. 젊은이들은 서울과 광주로 떠났다. 최근 손혜원 의원 때문에 목포에 이목이 집중되는 바람에 목포가 전 국민에게 관심 지역이 되어 사람이 늘고 길에 갑자기 차가 늘어나고 있지만 한시적이 아니라 지속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에게 투자하여 사람이 태어나고 사람이 돌아와야 한다. 사람 재생을 해야 한다.

“건축가의 공공적 역할 증대”…”능력이 확대 발전될 것”


장윤규: 아라타이 소사키가 2019년 프리츠커상(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림)을 받았다. 시골 마을을 예술촌으로 변모시킨 구마모토 현의 아트폴리스 등을 추진한 것이 인정을 받은 것 같다. 우리 시대에도 건축가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시나.
이충기: 건축사는 국가에서 특별히 자격증을 주는 몇몇 직업 중 하나다. 의사, 변호사, 건축사 모두 국가의 안녕과 보건, 복지를 위해 필요한 직업이다. 건축사는 공공에 노출된 직업이다. 사회적이고 공공적 개념에서 설계도 한다. 아무리 개인적인 건물이라도 공공에 노출이 되기 때문에 직업 자체가 공공성을 띤다. 우리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사회 공공적인 역할에 대한 요구는 있다. 지역사회에 봉사하면서 전문가 활동을 한다. 그간 우리나라는 건축가의 그 같은 역할이 미미했다.
▲이충기 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충기 교수가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건축가가 건축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 봉사도 많이 하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은 지역의 소외, 빈곤층을 대변함으로써 대부분 건축의 사회성이나 공공성을 위해 활동한 건축가들이었다. 이번에 프리츠커상을 받은 아라타이 소사키 역시 건축의 공공적 활동, 특히 국경을 넘어선 국제적 봉사활동을 인정받은 거라고 본다. 우리도 건축가가 재생을 통해 마을 건축과 공공건축, 설계만 하는 게 아니라 사회나 공공을 위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면 건축가의 능력이 확대 발전할 것이다.

장윤규: 일부 직업가는 자신의 능력으로 봉사 활동을 한다. 건축가들은 이전엔 그런 부분에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그런 기회가 더 늘어난 것 같다. 서울시의 마을 건축가 제도만 봐도 그렇지 않나.

이충기: 서울시 마을 건축가는 지역의 코디네이터 성격이 강하다. 도시나 마을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해결하고 온갖 것을 다 하는 역할을 한다. 나의 경우, 공공 건축가로 3년에 걸쳐 진행한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사무소’ 사업에 총괄 MP로 참여했다. 행정적인 공간에서 주민들이 쉬고 머무르는 공간으로 문화적 내용을 담아내고자 주민들의 의견을 듣고 건축가들이 재능기부를 통해 재탄생시키면서 건축의 공공적 역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장윤규: 마을마다 동사무소가 있는데 그게 바뀌었으면 마을이 굉장히 변화했을 것 같다.

이충기: 내·외부 공간을 바꾼 동사무소 리모델링이 재생의 침술로 작용했다고 본다. 도시재생의 마중물 역할을 하여 주변 지역의 공간도 개선되고 밝아지는 효과가 있다.

장윤규: 한 지역을 다 쓸어버리고 다시 짓는 재개발에 너무 익숙해졌다. 대규모로 짓고 마을과 도시를 변화시키려고 한다.
이충기: 아파트가 들어서서 도시의 길과 풍경을 모조리 바꾸지 않았나? 사람들에겐 심리적인 지리라는 게 있다. 재개발로 재건축으로 심리적 지리를 형성하던 기억 속의 동네 모습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큰 문화적 충격이다 .길은 도시의 자원인데 일방적으로 헐어버리고 길을 없애고 돌아가게 함으로써 사유화할 수 있나 싶다. 옛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바꿔가면서 쓰는 데 익숙지 못하다. 지금은 아파트가 포화 상태가 되었다. 결국은 다시 포화 상태가 된 아파트의 기능적 측면들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개선해야 할 일이 건축가에게 주어진 일인 것 같다.

장윤규: 제대로 된 도시재생을 위해 한 말씀 더 해주신다면.
이충기: 현재의 도시계획이나 지구단위계획은 도시를 건물로 채우기 위해 다양한 수법을 제공해주는 개발 유도의 공급계획이다. 진단도 없이 옛날 방식으로 처방을 계속하면 곪아 터지기 마련이다. 이제 공급만 하면 분양되고 장사가 되어 부동간 가격이 상승되었던 시대의 도시계획 방법은 바뀌어야 한다. 이미 지어진 건물들이 비워지고 쇠퇴하는데 한쪽에서는 여전히 공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미 지어진 쇠퇴한 건물이나 지역을 재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 문화, 산업, 경제 등 종합적 판단을 근거로 재생 방법을 제안해야 한다.


PROFILE
이충기 서울시립대 교수
●출생 1961년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건축공학 석사
●대한민국건축대전 초대작가
●한메건축사사무소 대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서울특별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위원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대학 건축학부 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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