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 조현병 '강제입원'…해외는 어떻게?

/삽화=이지혜 디자인기자

조현병 환자들의 범죄가 반복되면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치료·관리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의 입원 유형을 △자의입원 △동의입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 등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중 비자의 입원이라 볼 수 있는 유형은 △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이다. 그러나 보호의무자의 동의 요구와 복잡한 절차, 책임 소재, 매뉴얼 미비 등으로 헛점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호입원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의 동의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명의 진단을 요구해 절차가 까다롭다. 행정입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을 근거로 지자체장이 환자를 정신의료기관에 입원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지자체의 책임 기피로 극소수만이 행정입원 절차를 통과한다. 지난해 4월 기준 정신의료기관 입원환자 6만6523명 중 행정입원 환자는 3.8%인 2560명에 그쳤다. 응급입원은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자해·타해 위험을 판단해야 하는 일선 경찰의 매뉴얼과 전문성이 부족하는 지적이 제기된다.

◇'후견권' 강조하는 미국 "법원 판단으로 입원 가능"

미국은 '사법입원제도'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국가다. 사법입원은 자해·타해 소지가 있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해 법원이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제도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 필요성을 평가하면, 사법기관이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신장애인 보호와 정신보건의료 향상을 위한 원칙(MI 원칙)'에 따라 입원을 결정한다.

지난 17일 오전 4시 30분쯤 경남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40대 남성 안모씨가 본인 집에 불을 지른 뒤 계단에서 대피하는 이웃 주민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5명이 숨지고 10여명이 다쳤다. 사진은 안 씨가 불을 지른 아파트 모습./사진=뉴스1

미국은 강제입원의 법적 기반으로 국가의 '후견권'을 내세운다. 미국 법원은 여러 판례를 통해 "국가는 정신장애로 인해 그 자신을 돌볼 수 없는 시민에게는 후견권을 바탕으로 치료를 제공하고, 일부 정신장애자의 위험으로부터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경찰권을 근거로 보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당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만 입원이 시급한 환자를 응급입원시킨 후 조속한 시일 내에 청문을 진행한다. 환자 인권 보호를 위해서다. 청문 실시는 주마다 다르지만 보통 신청 후 5일~강제입원 후 10일 사이에 열려야 한다.

◇'준사법기관' 판단에 맡기는 영국·일본

영국은 준사법기관인 '정신건강심판위원회'가 환자의 치료 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을 파악해 강제입원을 심사한다. 강제입원이 결정되면 72시간 이내로 경찰이나 의료기관에서 환자에 대한 구금이 가능하다.

우리 정신건강복지법에 영향을 준 일본에서는 지자체장이 환자를 발견한 경찰관, 검찰관, 보호 관찰소장, 교정시설장, 정신과 병원 관리자 등으로부터 신고를 받으면 정신보건지정의에게 진단을 의뢰한다. 진단 결과가 나오면 '정신의료심사회'가 강제입원을 결정한다. 정신의료심사회 위원은 정신보건지정의사, 법률 전문가, 장애인 복지 연구자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일본은 2013년 보호의무자 제도를 폐지하면서 입원 절차를 단순화했다. 의료보호입원에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가 아닌 가족 등의 동의로 입원이 가능해지면서 보다 신속한 대응이 가능해졌다.

◇"환자 인권침해" vs "국가가 관리해야"...강제입원의 딜레마

/사진=이미지투데이

그러나 윤리적 관점에서 강제입원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환자의 의사에 반하는 비자발적 입원이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장애인단체나 인권단체 등은 강제입원에 대해 꾸준히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보호의무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동의하에 정신질환자를 보호입원시킬 수 있게 하는 조항에 헌법소원이 제기돼 2016년 9월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 결정으로 전문의 2명의 동의를 받아야 보호입원이 가능해졌다.

반면 의료계는 강제입원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23일 "그동안 발생했던 정신질환자에 의한 범죄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가해자인 환자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았을 경우 상태가 호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치료가 이뤄지지 못해 결국 사람의 목숨까지 빼앗기는 결과가 발생했다"며 사법입원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건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를 보장할 수 있는 균형잡힌 제도의 도입이다. 백종우 경희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사법 입원을 법원이 강제로 하는 게 아니라 가정법원 판사가 전문성을 가지고 정신건강 전문가들과 협력해서 인권과 안전을 동시에 잘 추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