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김정은 위원장, 늦어도 다음달 중순까지 文대통령 만나야”

문정인 대통령 통일안보외교특보/사진제공=뉴스1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26일 “북한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관심이 있다면 늦어도 다음달 중순까지는 남북 정상회담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 재개 조건으론 “북한이 먼저 신뢰구축을 위한 선제적 행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문 특보는 이날 ‘4·27 판문점 선언 1주년’을 맞아 머니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5월 27~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본 국빈 방문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게 바람직하다”며 “5월 초, 늦어도 5월 중순까지는 북한이 회담에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에 남북 정상회담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 계기로 방한이 거론되는 것과 관련해 “(그 때)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고 설명했다.

문 특보는 특히 현재의 북미 교착 국면 타개를 위해선 “북한이 먼저 마중물을 넣어야 한다”며 “북한이 조건 없이 하겠다고 한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기·검증을 실제로 이행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내 반대세력 설득과 한미 협의, 우리 정부의 대국민 설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선제적 행동으로 초보적인 신뢰를 구축해야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와 그 이후 ‘점진적 이행’도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거론되는 6자회담 복원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이라며 “여러 국가가 개입하면 성과가 빨리 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으로 전망했다.


다음은 문 특보와의 일문일답.

- 4.27 판문점선언’ 합의 1주년이다. 역사적 의의를 평가한다면
▶️판문점 선언은 2000년 6.15 선언과 2007년 10.4 선언의 연장선상에 있다. 1조(남북관계 개선)는 두 선언의 이행을, 2조(군사적 긴장완화 적대행위 중지)는 더 앞선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재확인한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가장 새로운 것이 3조(한반도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에 남북이 협력)다. 북한이 처음으로 정상수준에서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했다. 역대 남북선언 중 가장 새로운 대목이다. 6.15와 10.4 선언의 연속선상에서 남북 정상의 ‘완전한 비핵화’ 동의라는 아주 새로운 내용이 담긴 게 판문점선언이다.

-‘ ‘하노이 노딜’ 이후 평화 프로세스 후퇴 우려가 큰데
▶️북미 적대관계는 70년이 넘은 분쟁이다. 핵 문제는 1~2년 안에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평화프로세스의 종착역은 평화조약 체결 등 평화의 제도화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베트남평화협정, 캠프데이비드협정 등 역사적인 평화조약 모두 체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반도 문제는 더 복잡하다. 2017년 엄청난 위기 이후 지난해 반전이 왔다. 비핵화가 바로 올 수 있다고 보는 기대가 생겼지만 오히려 이게 신기루다. 지난해 만들어진 모멘텀을 굳히고 제도화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북한이 선제적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 가장 초보적 신뢰구축을 위해서다. 신뢰구축이 있어야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가능하고 그 이후 점진적 이행도 가능해진다. 북한이 조건 없이 하겠다고 한 조치들을 실제 행동으로 이행하라는 것이다. 북한이 3분의2를 파괴했다고 주장하는 풍계리 핵실험장 지역에 국제 전문가들을 부르고, 동창리 미사일 발사시험장도 유관국 참관 하에 폐기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북한이 선제적으로 하면 미국도 성의 표시를 보일 수 있다.

-북한이 미국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마중물’을 누가 먼저 넣느냐다. 순서상 북한이 먼저 해야 한다. 미국의 가장 큰 불만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해 보여준 게 없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왜 우리 보고 먼저 하라고 하느냐’고 한다. 지금까지 말과 약속만 있었지 북한의 행동이 없었다는 거다. 북한이 조건 없이 하겠다고 먼저 얘기한 것들을 실제로 이행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미 의회와 회의론자들을 설득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우리 정부의 대국민 설득, 대미 협의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의 행동이 없으면 우리가 미국에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재개 얘기를 꺼내기도 어렵다. 초기 조치 없이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거래) 얘기를 하는 건 시기상조일 수 있다. 북한이 구체적 행동을 보여줘야 (우리 정부가) 미국에 부분적이라도 제재완화를 요구할 수 있다.

-북한이 제안했던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너무 일찍 꺼냈다는 시각도 있는데
▶️영변 시설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있다.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 능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최소 10%에서 최대 70% 까지 상당히 다르게 해석한다. 그러나 지금 영변에는 5메가와트 원자로, 실험용 원자로, 연료생산공장, 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있는 고농축우라늄 시설, 삼중수소 제조 실험실, 북한 최대 연구개발(R&D) 센터, 영변과학기술대학 등 약 300개의 건물이 있다. 영변 이상의 좋은 카드도 없다.

- ‘영변 핵시설’이 북한 핵 능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어떻게 보나.
▶️북한의 연 핵무기 생산능력을 약 7개로 보는데 이 중 4개는 영변에서 나온다. 최소 50% 정도의 비중은 있다고 봐야 한다. 미국의 상응조치로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정도는 교환이 돼야 할 것으로 본다. 미국이 (북한이 요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완화에 부정적인 건 중국, 러시아와의 국경이 풀리면 제재가 유효한 카드가 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 사업이라도 허용을 하자는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제4차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이 수용할까
▶️남북정상회담은 당위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말 일본을 방문하면서 방한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전에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는 게 바람직하다. 남북이 충분히 협의하고 한미 정상이 얘기한 것을 북측에 전달하고, 트럼프 대통령 방한 때 북미정상회담이나 남북미 정상회담을 할 수 있으면 좋다. 5월 초, 늦어도 5월 중순까진 4차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대화의 동력이 살아 있을 때 해야 한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안보외교특보/사진제공=뉴스1

-김 위원장은 ‘연말 시한’을 제시했지만 북미 이견이 큰데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보유한 핵·화학·생물학 무기의 리스트를 신고해야 ‘포괄적 합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핵·화생 무기를 모두 신고하는 건 북한 입장에선 미국에 공격 리스트를 주는 거다. 부분 신고를 하면 미국이 은폐를 비난할 것이다. 북핵을 없애는 최고의 방법은 북미 관계가 혁명적으로 좋아지는 것이다. 북미 수교, 나아가 북미 군사협력까지 하면 가장 빨리 해결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북핵 해법은 군사적 행동, 제재와 최대 압박, 제재와 대화 등 소위 이중전략뿐이다. 미국이 정말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혁명적 사고를 해야 한다. 미국이나 한국의 협상가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대안을 들고 나와야 하는데 그게 없다.

-북러 정상이 처음 만났다. 비핵화 프로세스에 미칠 영향과 의미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중국과 러시아 모두 미국과 생각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북한 비핵화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한은 (외교) 다변화 전략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일괄타결 ‘빅딜’과 제재 유지를 계속 강조하면 북한은 중러와 협력을 강화하며 생존 공간을 넓히려 할 것이다. 북러 협력이 강화되면 우리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지도에서 중요한 대륙철도 연결과 러시아 파이프라인가스(PNG) 사업 등에도 긍정적이다.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각에서 6자회담 복원 가능성을 제기하는데
▶️필요성이 제기될 수는 있지만 지금은 미국이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 국가가 개입하면 성과가 빨리 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할 것이다. 다만, 핵문제 해결 이후 북한 경제 지원 단계에선 미국이 돈을 낼 의사가 없어 다자체제 복원 논의가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가 못한 것(북한 비핵화)을 ‘돈 한 푼 안들이고 했다’는 걸 내년 대선의 최대 슬로건으로 제시하고 싶을 것이다. 따라서 당분간은 양자 구도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은 없다.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난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비난 발언이 지극히 부적절한 건 분명하다. 북한이 대미 협상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라인에서 리용호 외무상-최선희 부상 라인으로 바꾸면서 미국에 ‘너희도 교체하라’는 메시지일 수 있다.

-지금의 한반도 정세에서 전망할 때 최선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를 전망한다면
▶️5월 상반기 남북정상회담, 5월 하순 북미정상회담, 남북미 정상회담 열리고 6월부터 ‘실천적 행동’에 들어가는 것이 베스트다.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행보를 시작하고 미국은 제재를 부분 완화하고, 남북 교류가 풀려나가는 게 최선이다. 북한이 5월 남북정상회담에 응하지 않으면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남북 교류협력이 힘들어지면서 향후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고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7년 보다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