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萬人)에 대한 만인(萬人)의 비판 그리고 비판이 비방이 될 때

흡사 전쟁 같은 말(言)의 투쟁이다. 장관후보 인사 청문회가 열리고, 선거도 다가오니 더 그렇다. 포털에서 정치 관련 기사를 검색하고, 또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을 읽다보면 모두가 모든 것을 비판하는 혼란스러운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실감한다. 말 그대로 만인(萬人)에 대한 만인(萬人)의 비판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17세기 강력한 국가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토마스 홉스가 그의 책 <리바이어던>에서 언급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The war of all against all)’이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자연 상태’가 2019년 한국의 정치와, 그것을 보도하는 언론, 그리고 인터넷 의견 시장의 모습이다.


말(言)과 그레샴의 법칙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부르고, 비판은 또 다른 비판을 낳는다. 가는 말이 나쁘고 오는 말은 더 나쁘다. 힘이 동반된 물리적 투쟁에 비해 말(言)의 전쟁은 그 추상적이고 개인적 속성 때문에 더 쉽게 발생하고, 그래서 더 통제 불능상태에 빠지기 쉽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특징되는 현대사회에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당연하고,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무분별한 투쟁이나 전쟁과 같은 상태가 용인되어야 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말에도 그레샴의 법칙이 적용된다. 좋은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몰아내는 현상은 현대의 말(言) 시장에서 더욱 분명해 보인다.

당연히 어떤 대상을 비판하는 행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교수라는 나의 직업도 엄격히 말하면 비판적 태도와 행위로 먹고사는 자리다. 그리스 철학자인 디오게네스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언명한 ‘파르헤시아’도 권력에 대한 비판, 쓴 소리고, 근대 철학의 기초를 닦은 임마누엘 칸트가 회의주의와 독단, 종교와 이성 사이에서 선택한 최선의 길 또한 비판적 태도다. 미셸 푸코가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보존하기 위해 택한 실천적 행위도 역시 비판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비판이 이런 용기나 성찰적 태도와는 너무 동떨어진 비방, 책임회피, 선동적 행위들이라는 점이다.

비난, 비판, 비평 그리고 비방
비방과 비판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비방, 비난, 비판, 비평은 우리 실생활에서 엄격한 구분 없이 혼용되고 있다. 특히 비난, 비판, 비평은 사전적으로도 그 의미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셋 모두 대상에 대한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리는 판단과 언설행위, 그리고 잘못에 대한 지적의 의미를 가진다. 굳이 구분하면, 그 판단이 얼마나 감정적인가, 또 얼마나 부정적인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비난이 상대적으로 가장 감정적이고 부정적인 판단과 표현이라면 비평은 그보다는 이성적 판단과 연관된 행위라 할 수 있다. 비판은 그 중간쯤에 위치한다. 근거 없이 헐뜯는 행위를 의미하는 비방(誹謗)은 비난과 상대적으로 가깝지만 비판과 비평도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비방이 된다.

비방(誹謗)적 비판의 네 가지 유형
시시비비를 가리는 구체적이고 이성적 행위라 보기 어려운 비방(誹謗)적 비판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추상적이고 감정적인 비판이다.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판단하는 행위에는 당연히 인지적 노력(elaboration)이 요구된다. 대상의 구체적 속성에 대한 비판적 판단을 위해서는 충분한 지식도 필요하고 비교 분석할 역량과 관심, 시간도 요구된다. 그런 작업이 쉬울 리 만무하다. 친구가 싫으니 나도 싫고, 한 가지가 미우니 열 가지가 다 싫은 식의 기계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은 손쉬운 선택이다. 이유도 구체적이지 않고 근거도 제시 않으며 그냥 싫다는 식이다. 특히 판단하고 반응해야 할 정보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정보사회에서 우리의 인지적 노력은 제한적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이고 분석적인 이성적 판단을 회피하고 손쉬운 감정적 판단에 의존할 때 비판은 비방이 된다.

두 번째는 과시적, 위선적 비판이다. 비방적 비판이 항상 감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매우 이성적이고 전략적 판단을 동반하기도 한다. 자기 과시적, 보여주기식, 위선적 비판이 그렇다. 비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웬만한 비판은 눈에 띄지 않는다. 더 강하게 비판해야 더 주목받는다는 생각으로, 애써 눈알을 부라리고 목에 핏대를 올린다. 외양은 그럴 듯한 논리로 포장하지만 남의 잘못을 강하게 지적함으로써 자신의 의(義)를 드러내려는 위선적 목적이 깔려 있다. 이득을 챙기려는 검은 속마음을 감추고 짐짓 용기 있는 체, 의로운 체하는 하는 위선적 비판은 주로 정치인이나 지식인들에 의해 행해진다. 단순한 부화뇌동식의 감정적 비방보다 교묘하고 그래서 더 악성이다.

자신(들)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비판도 문제적이다. 세 번째, 책임 회피적 비판이다. 남을 죽이고서라도 자기는 살겠다는 것이니 전략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본능적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의 비판이나, 내 잘못보다 그의 잘못이 더 문제라는 식의 비판이다. 이런 책임 회피적 비판은 어찌 보면 선악과(善惡果)를 놓고 서로를 비방하고 책임을 떠넘겼던 그 에덴동산의 사건과 유사하다. 구스타프 융의 용어를 빌리면, 인류 최초의, 원형적(archetype, 原型) 비판이라 할 만한 것이다. 책임 회피적 비판은 연쇄적으로 적대적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전염병처럼 확산되어 사람들 간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붕괴시킨다는 점에서 공동체에 치명적이다.

마지막으로 선동적, 선전적 비판이다. 비방적 비판을 개인적 감정의 표현이나 자기 과시적 행위, 혹은 본능적 측면에서만 보는 것은 순진한 관점일 수도 있다. 자기 과시적, 위선적 비판이 악성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개인적, 도덕적 문제라 할 수 있다. 더 위험한 것은 선전과 선동적 비방이다. 개인적 차원의 선전과 선동도 가능하겠지만, 대개는 집단적이고 전략적인 판단에 따라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프로젝트에는 계획과 체계와 기술이 당연히 필요하다. 적을 비난하고, 악마화함으로써 우리의 결속을 도모하는 것은 고전적 선전 기법에 속한다. 헤럴드 라스웰의 지적처럼 선전은 본질적으로 투쟁이고 전쟁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면 이런 유형의 비방이 더 기승을 부린다.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 흑색선전, 마타도어, 가짜뉴스가 넘쳐난다. 드루킹만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이 더 쉽게 보인다. 부정성이 가지는 주목의 힘이다. 누구를 칭찬하다 비판하는 경우는 많아도, 비판하다가 칭찬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감정의 골 때문이다. 이래저래 비판은 넘쳐나게 된다. 청와대 비서실 여민관에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족자가 걸려 있다고 한다. 남에게는 관대하고 자신에게는 엄하라는 의미다. 이번 장관 후보 청문회를 통해 남 비판에 앞장서던 이들의 속살을 들여다보면서 춘풍추상의 자세가 새삼 아쉽게 느껴진다. 얼마 전 별세하신 어머님을 추모의 마음으로 회고하다가 문득 깨닫게 된 사실이 있다. 놀랍게도 내 평생 모친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험담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다. 최소한 자식에게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또 개인적 성향으로 비판적 태도가 두드러진 자식에게 보이신 무언(無言)의 훈육이고 모범이었던 것을 이제야 알았다. 우리 어머니들 대개가 그랬을 것이다. 만인에 의한 만인의 비판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런 어머님을 기리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부터 반성한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