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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생 자녀에게 주는 100가지 말상처, "걘 SKY 갔는데, 넌 이것 밖에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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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상규 소장
  • 2019.05.19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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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로드]<70>'실패한 건, 네가 노력하지 않은 때문'이라는 편견

[편집자주] i-로드(innovation-road)는 기업이 혁신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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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정 디자인기자
#“걔는 올해 SKY 들어갔는데, 넌 이것 밖에 못하니?”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국제구호개발 비영리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은 어른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고 20년이 지나도 아이 마음에 든 멍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며, 아이들에게 상처주는 말 100가지를 선정하고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때의 감정을 그린 그림과 함께 ‘그리다. 100가지 말상처’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 대신 “이렇게 바꿔서 말해 주세요”, “이 말은 절대 아이에게 쓰지 말아 주세요”라고 권유하고 있다.

그런데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대입 재수생들도 매일 부모가 무심코 내뱉는 말들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예컨대 모의고사 성적이 나올 때 "걘 SKY 들어갔는데, 넌 이것 밖에 못하니?", "성적이 왜 이래?"라거나, 아침에 학원에 갈 때 "걔는 학원도 안 다니고 1등 했다더라", "학원비가 얼만데 수업을 빼먹어" 등이다.

올해 대입 재수생인 필자의 조카에게도 할머니는 만날 때마다 “재수생인데 더 열심히 해야지. 옆집 손자는 작년에 재수하고 올해 SKY 들어갔다. 너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일류 대학 들어가라”고 말씀하신다. 말투도 손자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게으른 것처럼 보인다며 질책이나 훈계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데 재수생 손자를 격려하고 자극을 주기 위한 차원에서 하시는 말씀이 실제로는 ‘말상처’가 되기 십상이다.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는다."

부모가 재수생 자녀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아마도 "죽어라 열심히 하면 일류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일 것이다. 이 말은 꾸준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사고방식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세계관을 사회 심리학(social psychology)에서는 ‘공정한 세상 가설’(the just-world hypothesis)라 부른다. 이에 따르면 이 세상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보상을 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벌을 받게 돼 있다. 예컨대 대학 입시에서 열심히 공부한 학생은 (일류) 대학에 합격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떨어진다.

이와 비슷한 시각이 캐나다 작가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이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s: the Story of Success)에서 제시한 ‘1만 시간의 법칙’(10,000-Hour Rule)이다. 글래드웰은 이 책에서 "큰 성공을 거둔 음악가나 운동선수는 모두 1만 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훈련했다"며 "1만 시간 동안 훈련을 하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대학 입학 시험에 적용하면, '1만 시간 동안 공부하면 SKY 일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가 가능해진다.

성실하게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은 비단 글래드웰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대성이론을 제창한 천재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도 “천재는 1%의 재능(talent)과 99%의 노력(hard work)이다”고 말하며 재능보다 노력을 앞세웠다. 미국의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Thomas Edison)도 “천재는 1%의 영감(=뛰어난 아이디어)과 99%의 땀(=노력)이다”고 말했다.

미국의 작가 데이빗 솅크(David Shenk)는 그의 저서『우리 안의 천재성』(The Genius in All of Us: New Insights into Genetics, Talent, and IQ)에서 타고난 음악 천재로 알려진 모차르트(Mozart)가 실제로는 유소년기부터 집중적인 훈련을 받고 노력을 거듭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역시 재능보다 노력이 중요하다고 결론지었다.

따라서 재수생 자녀에게 부모가 "죽어라 공부하면 SKY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어 보인다.

#"실패했다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게으름을 핀 탓이다."

그런데 문제는 ‘천재 모차르트는 노력했다’는 사실이 ‘노력하면 모차르트와 같은 천재가 될 수 있다’라는 명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올바른 명제는 ‘노력 없이는 모차르트 같은 천재가 될 수 없다’이다. 실제로 많은 실증연구에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든지 ‘노력하면 언젠가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사고방식이 부정되고 있고 노력의 양과 성과간의 관계가 악기나 경기종목 등에 따라 달라진다고 밝혀지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성공한 사람은 많은 노력을 한 사람이고 반대로 실패한 사람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 사람으로 생각하고 실패의 원인을 당사자에게서 찾는다는 데 있다. 소위 ‘피해자의 비난’(victim blaming)이라 부르는 편견이다. 실제로 세상에는 '자업자득', '인과응보', '뿌린 대로 거둔다' 등 피해자를 비난하는 말들이 많다. SKY에 못 들어가거나 대학에 떨어지면, 아이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사고도 그런 편견 때문이다.

재수생 자녀에게 “열심히 하면 SKY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일류 대학에 못 가면, 네가 열심히 안 한 탓이다'라는 편견을 처음부터 전제로 깔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상처를 받고 마음에 큰 가시가 될 수 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SKY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일류 대학에 못 가거나 대학에 떨어져 재수생이 된 것이 반드시 아이가 열심히 하지 않고 게을러서 그런 때문만은 아니다. 노력은 보상받는다는 생각은 매우 아름답게 들린다. 하지만 그것은 희망일 뿐이고 현실 세계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본 칼럼은 야마구치 슈(山口周)의 저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다산북스, 옮긴이 김윤경)를 참조했습니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9년 5월 19일 (04:00)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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