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인자 AI 관리·보호장비 스마트화…연구실 안전도 4IR

21일 고려대학교 미래융합기술관 강당에서 열린 연구실안전 정책세미나에서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이황원 정책실장이 ‘연구실안전의 주요이슈 및 중점 추진사항’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낮엔 기업에서 일하고, 밤엔 대학랩실에 돌아와 연구해요. 저 같은 경우도 만일 사고가 나면 학교에서 가입한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나요.”
“정기점검 때 안전진단, 보건진단 둘 다 받아야 하나요.”


지난 21일 고려대 미래융합기술관 1층 강당. 강연이 끝나자 사방에서 질문이 쏟아졌다. ‘연구실 안전법’을 주제로 2시간 이어진 딱딱한 강의. 밀려드는 졸음에 고개를 꾸벅일 법도 한데 앳된 얼굴의 학생 연구원들은 달라진 안전 인식을 반영하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와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가 자율적 연구실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이날부터 닷새간 전국에서 ‘제1회 연구실 안전주간’ 행사를 개최했다. 강당 안은 수도권 대학에서 온 300여명의 이공계 석·박사, 학생연구원, 연구실 책임자, 연구실 안전환경 관리자들로 북적였다.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참석자들은 올해부터 새롭게 적용되는 연구실 안전 정책·제도 관련 내용을 한자라도 놓칠까 꼼꼼히 메모하며 휴대폰 카메라로 발표화면을 찍기도 했다.

21일 고려대학교 미래융합기술관 강당에서 열린 연구실안전 담당자를 위한 교육 세션에서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김은진 박사가 ‘연구활동종사자들이 준수해야하는 법적사항 및 수행방법’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사진=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연구실안전 정책세미나에서 이황원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정책실장은 “연구실 안전전담조직을 육성하고 전문인력 충원 사업을 확대하는 한편, 기관에서 개별 연구실에 대한 안전관리계획을 사전 평가하고 진단할 수 있는 제도와 기술을 지원해 자율적 안전관리 기반을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실 내 ‘위해 인자’를 쉽게 알도록 AI(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안전정보 제공 시스템’도 개발한다. 이 실장은 이를 위해 “연구자 안전 확보에 필요한 정보를 선별, 가공해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영만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대한환경안전협회 고문)는 “안전 불모지로 꼽힌 대학 연구소가 짧은 기간 이 정도로 바뀐 데는 과학기술 정부 부처의 지속적 관심과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의 역할이 컸다”며 “민간 주도의 연구안전 분위기 조성을 위해 대학에 안전 연구를 주로 맡아 하는 연구안전공학과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고려대 에너지·안전팀 신용선 부장은 “4차 산업혁명 관련 융·복합 연구가 늘면서 안전 관련 새로운 장비나 기술, 가이드라인, 교육자료 등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며 “정부가 이런 것을 제작·표준화해 보급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21일 고려대학교 노벨광장에서 열린 안전장비 로드쇼에 참여한 3M이 다양한 실험보호구를 전시하고 있다./사진=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이날 행사 내용도 다양했다. 연구실 안전 규정을 퀴즈로 배우는 ‘연구실안전왕 선발대회’와 함께 다양한 실험보호구를 직접 입고 착용해 보는 ‘안전장비 로드쇼’, 각종 사고 사례 웹툰 전시회 등이 진행됐다.

로드쇼에 참가한 개인안전보호구 전문업체 3M 관계자는 “최근 보호장구는 둔탁하지 않고, 스마트기기 패션 액세서리처럼 잘 나온다”며 “어디 뒀는지 찾을 필요 없는 넥밴드 형태의 귀마개, 마스크와 이어폰 일체형으로 통신기능을 더한 방독마스크까지 간편성과 실용성을 갖춘 제품이 인기”라고 말했다.

21일 고려대학교 미래융합기술관 앞마당에서 공모전 수상작 전시, 현장설문, 룰렛돌리기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사진=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실제 사고 접수 프로세스를 소개한 전시부스도 주목을 받았다. 사고 사례를 알기 쉽게 웹툰으로 제작한 내용을 보면 지난해 1월 28일 20시경, 모 대학 광학실험실에선 테라헤르츠파(THz,1초에 1조번 빠르게 진동하는 고주파수 대역)를 발진시키기 위해 거울과 렌즈를 이용해 레이저(파장 800nm)에서 나오는 빔 경로를 조절하는 실험을 하던 중 초점 확인 과정에서 세기가 매우 강한 빛에 쏘여 연구자의 시신경이 손상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3년간 우리나라 이공계 연구실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600여건. 이중 4차 산업혁명 관련 고정밀도를 요구하는 연구가 늘면서 기관·대학별로 보급된 첨단 연구장비나 유해화학물질 사용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가 비교적 많다.

21일 고려대학교 미래융합기술관 앞마당에서 공모전 수상작 전시, 현장설문, 룰렛돌리기 등의 체험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사진=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

노영희 국가연구안전관리본부장은 안전주간 행사에 대해 “연구안전 서포터스를 발족하고, 수도권을 비롯해 충청·영남·호남권 등 권역별 안전주간 행사를 실시해 관계자 모두가 연구실 안전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실질적 참여의 장을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정병선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과학기술 분야 R&D(연구·개발) 활동이 고도화·다양화됨에 따라 연구실 위험요소도 복합적이고 다양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면서 “연구자 보호를 위한 연구실 안전문화가 현장에 정착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