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 노려라" 희귀의약품 개발 뛰어든 K-바이오

한미약품 (310,000원 ▼5,000 -1.59%), GC녹십자 (111,100원 ▼400 -0.36%), SK바이오팜 등 희귀의약품 개발에 뛰어드는 국내 제약·바이오업체들이 늘고 있다. 당장 시장규모는 작지만 조건부 허가 등의 정책 혜택을 누릴 수 있고, 희귀질환 치료를 기반으로 약효를 늘려 시장을 확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아약' 희귀의약품에 눈 돌리는 업체들 = 희귀의약품은 암, 혈우병 등 환자 수가 적은 희귀·난치성 질환이나 기존 치료제가 없는 질환의 의약품이다. 미국에서는 환자 수 20만명 이하인 질환, 국내에선 환자 수 2만명 이하인 질환을 희귀질환으로 분류한다. 많은 제약사가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개발을 기피해 '고아 약(orphan drug)'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희귀의약품 연구개발(R&D)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보건산업진흥원이 지난 12일 발행한 '국내외 희귀의약품 시장 및 연구개발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으로 국내 44개 업체가 93개의 희귀의약품 신약후보물질을 이용해 106건의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제약사 중 가장 적극적으로 희귀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단장증후군 치료제 'HM15912'는 지난달 미국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단장증후군은 전체 소장의 60% 이상이 소실돼 흡수장애를 일으키는 희귀질환이다. 현재까지 회사는 FDA로부터 총 4건의 희귀의약품 지정을 획득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희귀의약품은 시장규모가 크지 않지만, 미래가치가 있는 의약품"이라며 "빠르게 상용화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GC녹십자는 최근 R&D 전략의 일환으로 출혈성 및 대사성 희귀의약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골격 이상, 지능 저하 등이 발생하는 선천성 희귀질환 헌터증후군 치료제인 '헌터라제 ICV'를 일본에 기술수출한 바 있다.

이외에도 SK바이오팜, 제넥신 (7,350원 ▼30 -0.41%), 바이오리더스 (3,570원 ▼210 -5.56%), 크리스탈 (3,100원 ▲20 +0.65%)지노믹스, 파멥신 (2,915원 ▼285 -8.91%) 등은 희귀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FDA로부터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은 국내 개발 신약후보물질은 2011년 1건에서 지난해 16건으로 늘어났다.

보건산업진흥원 관계자는 "앞으로도 희귀의약품 개발은 늘어날 것"이라며 "희귀의약품은 개발 과정에서 높은 약가, 독점권 등을 얻을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조건부 허가 등 혜택 多…성장 기회"=각국 정부는 제약사들이 시장성이 낮은 희귀의약품 개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유인책을 펼치고 있다. 미국은 희귀의약품 지정 의약품에 세금감면, 허가신청 비용 면제, 7년간 시장 독점권 등의 혜택을 준다. 한국은 임상 2상을 마치고 우선 판매허가를 내주는 조건부 허가제도를 시행 중이다.

시장 확대가 가능하고, 경쟁자가 적다는 것도 희귀의약품 개발의 장점이다. 희귀질환 7000여종 중 치료제가 있는 질환은 350여개에 불과하다. 업계관계자는 "후발주자인 국내 업체가 다국적 제약사가 장악하고 있는 분야에 진입하는 것은 어렵다"며 "희귀의약품 같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것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다국적 제약사 MSD의 희귀의약품 항암제 '키트루다'는 2014년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 치료제로 출시된 이후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키트루다는 2015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흑색종을 완치한 치료제로 이름을 알리면서 유명해졌고, 이후 치료 질병을 비소세포폐암, 방광암, 호지킨림프종 등으로 확대했다.

키트루다의 지난해 매출은 71억71000만달러(약 9조2587억원)을 기록했다. 제약산업 분석업체 '이밸류에이트 파마'(EvaluatePharma)는 키트루다의 2024년 매출 규모가 127억달러(약 15조원)로 세계에서 가장 매출이 큰 희귀의약품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세계 제약시장 인수합병(M&A)도 희귀의약품 개발회사 중심으로 이뤄졌다. 다케다제약은 아일랜드 희귀의약품 제약기업 샤이어를 642억달러(약 76조원)에 인수했고, 사노피는 혈우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미국 바이오베라티브를 115억달러(약 13조원)에 사들였다. 희귀의약품에 대한 다국적 제약사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희귀의약품을 개발하는 국내 업체들의 기술이전 가능성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희귀의약품 시장규모도 성장하고 있다. 이밸류에이트 파마에 따르면 2017년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는 1250억달러(약 148조원)이고, 2024년까지 연평균 11.3%로 증가해 약 2620억(약 31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