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대행진' 나선 홍콩 시민들…"람 물러나라"

/사진=AFP.

홍콩 정부가 대규모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추진을 전격 보류한 가운데 홍콩 시민들은 완전 철폐와 캐리 람 홍콩 행정수반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16일 로이터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30분부터 최소 수만 명의 홍콩 시민들이 빅토리아 공원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검은 대행진'으로 이름 붙여진 이번 시위에 홍콩 시민들은 검은색 옷을 입고 람 장관의 퇴진과 송환법 전면 철회를 요구했다. 일부는 꽃을 들고 전날 고공시위를 벌이다 추락해 숨진 렁(35)모씨를 추모했다.

2014년 발생한 '우산혁명'으로 저항의 상징이 된 우산을 들고 참석한 이들도 있었다. 이날 홍콩 관광명소인 사자산 정상에는 "홍콩을 위해 싸우자"라고 적힌 초대형 플래카드가 걸리기도 했다.

한 시간의 집회 뒤 시위대는 홍콩 입법회와 정부청사 건물이 있는 애드머럴티 지역을 향해 행진을 시작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집회와 달리 경찰이 바리케이트 등으로 길목을 막지 않았다며 시민들이 원활하게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위에 참석한 매트 챈은 "사실 오늘 시위에 참석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그러나 12일 홍콩 시민들이 (경찰에게) 진압당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파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홍콩 경찰은 12일 최루탄과 고무탄, 물대포를 쏘며 강경 대응했고, 시위대는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맞서다 72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번 집회는 주최 추산 100만명이 참여한 지난 9일 시위 이후 일주일 만에 다시 열리는 대규모 집회다. 주최 측은 이날도 100만명 이상이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16일(현지시간) 한 홍콩 시민이 전날인 15일 고공시위를 벌이다 숨진 렁모씨를 추모하고 있다./사진=로이터.

로이터는 이번 시위가 1997년 중국에 홍콩이 반환된 이후 최대 규모라면서 람 장관의 통치 능력이 도마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특히 홍콩 정부가 송환법 추진을 전격 보류했음에도 시위대는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다시 시위에 나섰다. 전날 람 장관은 "우리는 여전히 (홍콩의 법과 범죄인 인도 제도의) 허점을 막아야 한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법안이 철회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가 송환법 재추진 가능성을 열어두자 홍콩 시민들도 시위를 열기로 한 것이다.

홍콩 야당의 클로디아 모 의원은 "람 장관이 (송환법을) 전면 철회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후퇴하지 않는다"면서 "그가 (사퇴하지 않고) 계속하겠다면 우리도 (시위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중국은 홍콩 정부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이날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중국 중앙정부는 람 장관을 굳건히 지지한다"면서 "일부 홍콩 시민들이 해외세력의 졸병이 됐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홍콩 시민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한 범죄자 인도법은 중국 본토와 대만, 마카오 등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시위대는 중국이 반중 인사나 인권운동가 탄압에 이를 악용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