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합병 툴제넥신, 면역체료제+유전자가위 시너지 노린다

최근 제약·바이오 업계 분위기는 암울하다. 연이은 악재로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의 품목허가 취소,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보톡스 균주를 둘러싼 국내 제약사 간 소송전 등의 이슈가 최근 몇 달 사이 잇따라 터지면서 주가가 크게 흔들렸다.

기대를 잔뜩 모았던 제약사들의 신약 개발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업계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파이프라인(개발 중인 신약)만 가지고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는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이 늦어지면 기업 가치도 하향 조정 받을 수밖에 없다.


비보만 넘쳐나던 제약·바이오 업계에 얼마전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뉴스가 하나 나왔다. 면역치료제·유전자백신을 개발하는 코스닥 상장사 제넥신 (7,350원 ▼30 -0.41%)과 '유전자 가위' 기술을 보유한 코넥스 대장주 툴젠 (67,500원 ▼2,000 -2.88%)의 합병 소식이다. 두 업체 모두 미래 성장가치가 높은 기술 보유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던 기업이다. 두 회사의 합병이 어떤 시너지를 낼지 투자업계에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코스닥 문 두드리던 툴젠 '깜짝' 합병

지난 19일 제넥신은 툴젠을 흡수합병한다고 발표했다. 합병 회사의 사명은 '툴제넥신'이다. 합병 가액은 제넥신이 한 주당 6만5472원, 툴젠이 7만8978원으로 결졍돼 1대1.2 비율로 합병이 진행된다. 다음달 30일 주주총회를 거쳐 8월31일 합병을 완료할 계획이다.


두 회사의 합병 결정은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깜짝 뉴스였다. 코넥스 대장주로 기대를 모았던 툴젠이 언제 코스닥 시장으로 이전상장 할지가 업계의 큰 관심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유전자 가위로 불리는 유전자 교정기술을 보유한 툴젠은 2014년 코넥스 시장에 상장했다. 2만~3만원대 였던 주가는 툴젠의 유전자 가위 기술이 주목을 받으며 2018년 초 16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시가총액은 1조원에 육박했다. 코스닥 상장은 시간 문제인 듯 했다.

하지만 코스닥 문턱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다. 2015년 첫 도전에선 최대주주와 2대주주 간 지분 격차가 크지 않아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16년에는 유전자 가위 기술의 특허권에 대한 실효성 논란으로 한국거래소에 승인이 거부됐다.

지난해 다시 코스닥 상장을 노렸지만 이번엔 툴젠이 핵심 기술인 '크리스퍼 카스나인'(CRISPR 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을 부당하게 가져갔다는 의혹이 발목을 잡았다. 툴젠 최대주주인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수석연구위원이 서울대와 특허권을 나누지 않고 툴젠으로 기술을 이전했다는 문제제기였다. 결국 툴젠은 지난 1월 코스닥 예비심사 청구를 자진 철회했다.

툴젠이 코스닥 상장을 고심하던 찰나 제넥신이 손을 내밀었다. 지난 5월말쯤 성영철 제넥신 회장이 김 수석연구위원에게 합병을 제안하면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난 21일 열린 애널리스트 간담회에서 서유석 제넥신 대표는 "성 회장은 유전자 가위 기술이 빨리 상용화하길 원했다"며 "3주 전 김 수석연구위원을 만나 합병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코스닥 상장에 걸림돌이었던 서울대와의 특허권 분쟁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봤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병화 툴젠 부사장은 "특허권에 대한 이의제기는 보편적인 것"이라며 "서울대와 협의하고 있으며 합병에는 큰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항체융합단백질' 제넥신+'유전자 가위' 툴젠 시너지는?

두 회사의 합병이 의외라는 시각도 있다. 항체융합단백질을 주기술로 보유한 제넥신이 유전자 가위 기술 도입으로 기술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제넥신의 원천기술은 '하이브리드 FC'(hyFc)라 불리는 항체융합단백질이다. 우리 몸에 존재하는 두 가지의 항체인 IgD(아이지디)와 IgG4(아이지지포)를 결합한 항체로, 여기에 다양한 신약물질을 탑재해 환자의 몸에 투여할 수 있다.

기존 단백질 의약품과의 차이점은 약물의 체내 지속성을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단백질 의약품은 주성분이 단백질이라는 특성 때문에 경구 투약을 할 경우 위산, 효소 등에 의해 분해돼 약효가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주로 주사로 투약하는데, 현재 시중에 있는 대부분의 단백질 의약품은 체내 분해 속도가 빨라 거의 매일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제넥신의 하이브리드 FC는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한 기술이다. 항체가 혈관 내 세포를 저장소처럼 사용하는 원리를 이용해 항체의 체내 지속 시간을 한달까지 늘려 약물이 서서히 퍼져나가도록 한다.

제넥신은 현재 하이브리드 FC를 기반으로 다양한 신약을 개발 중이다. 현재 임상2상이 완료된 약물은 △성장호르몬결핍증 치료제 GX-H9 △만성 신부전증 유래 빈혈 치료제 GX -E2 △호중구감소증 치료제 GX-G3 등이다. 고형암 등을 치료하는 항암제 하이루킨(GX-I7)도 현재 임상 1b/2a상이 진행 중이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제넥신이 보유한 파이프라인의 가치는 약 3조원에 달한다.

항체융합단백질 기반의 치료제가 대부분이지만 DNA 치료백신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자궁경부전암을 유발하는 HPV(인유두종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DNA 백신(Papitrol-188)이 현재 유럽에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제넥신의 DNA 치료백신 기술이 툴젠의 유전자 가위 기술과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특정 유전정보를 제거하거나 외부 유전자를 정해진 위치에 삽입해 몸 속의 유전 정보를 바꾸는 기술이다. 툴젠은 유전자 가위의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유전자 가위 업체로 1세대 기술부터 최근 각광 받고 있는 3세대 기술(크리스퍼 카스나인)까지 보유 중이다.

유전자 가위 기술은 현재 연구용이 대부분이지만 치료용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시장 규모는 급격히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2015년 2억7000만달러(약 3000억원)였던 유전자 가위 시장은 매년 평균 30%씩 성장해 2022년에는 23억달러(약 2조7000억원)로 10배 가까이 성장할 전망이다.

◇합병으로 기업가치 '쑥쑥'…"주가 상승 기대"

증권업계에서는 최근 제약·바이오 종목들의 침체 속에서도 두 회사의 합병은 주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툴젠의 기술이 코넥스보다 자금 조달에 유리한 코스닥으로 옮겨 오면서 연구 개발에도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현재 제넥신과 툴젠은 모두 상용화 단계의 신약 없이 기술이전 등으로만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매년 수십~수백억원의 영업적자를 내고 있어 연구 개발을 지속하기 위한 자금 조달이 필수다. 양사 합병으로 기업가치를 올리면 자금 조달도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구자용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제넥신은 툴젠의 기술과 파이프라인을 추가해 기업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다"며 "툴젠은 제넥신의 임상개발 경험과 자본력을 바탕으로 개발 진행을 가속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툴젠의 기술이 코스닥에서 인정받게 된다면 주가는 지금보다 더 오를 수 있다. 툴젠 주가는 지난 21일 기준 7만9000원으로 최고점이었던 지난해 2월27일 16만8800원보다 53.2% 하락했다. 코스닥 이전상장 실패와 특허권 분쟁의 영향이 컸다.

KTB투자증권에 따르면 해외 유전자 가위 개발사들의 평균 시총은 12억달러(약 1조4000억원)로 현재 툴젠의 시총(약 5000억원)보다 2배 이상 많다. 툴젠과 같은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을 보유한 크리스퍼 테라퓨틱스(CRISPR Therapeutics)는 지난해 10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유전자 가위 치료제 최초 상업 임상 허가를 받으면서 현재 시총은 26억달러(약 3조원)를 형성하고 있다.

정승규 키움증권 연구원은 "툴젠은 3세대 원천기술을 보유한 전세계 5대 기업 중 하나인데 시총은 이들보다 저평가 돼 있다"며 "특허권 관련 이슈만 잘 해결되면 기업가치는 큰 폭으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툴제넥신은 앞으로 각 사가 보유한 기술을 결합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치료제를 개발할 계획이다. 두 회사의 합병으로 인한 신약 가치 상승은 밸류에이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합병은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거의 최초로 외부로부터 혁신적인 기술 도입을 위한 합병으로 볼 수 있다"며 "합병 이후 기업가치는 약 3조5000억원으로 추정되는데, 상장 주식수 등을 고려해 목표주가는 11만원을 제시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