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경 보험연구원장, "보험CEO는 왜 밤잠 설칠까요"

“존재감 없이 조용히 3년 임기를 채우는 원장보다는 ‘문제’가 되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원장이 되려고 해요. ‘꽃길’만 갈 생각 없어요.”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 원장실에서 만난 안철경 원장은 ‘28년 경력의 보험전문가’다운 소신을 밝혔다. “시장 중심의 연구를 하겠다”는 취임사에서 한 발 더 나간 발언이었다. 안 원장이 최근 만난 한 보험사 CEO(최고경영자)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업계 위한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 그냥 연구원은 정직하게만 해 달라”는 조언을 했다는 것이다.

안 원장은 보험운송과 관련된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1991년 보험연구원과 분리 되기 전의 보험개발원에 연구원으로 입사했다. 이후 원내 주요 부서인 금융정책실장, 연구조정실장을 거쳐 2012년 부원장을 맡았다. 부원장 임기를 채우고 연구자로 돌아와 ‘북한 보험’에 몰두하다 올해 안식년을 맞았다. 아내와 수년만에 유럽 여행을 떠났던 그는 원장 후보로 선정되면서 급히 귀국했고 보험연구원장이 됐다. 입사 후 28년 만이었다. 연초만 해도 그는 본인이 원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여태껏 내부 출신이 승진해 연구원장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험에 대한 열정과 지식, 현안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대안까지 가진 사람은 그뿐이었다. 사실 보험연구원은 정부 정책이나 업계의 이해관계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사실’에 근거한 연구를 하는 것이 ‘숙명’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게 그의 의지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한 대학교에서 열린 ‘즉시연금’ 토론회에 참석해 발제와 토론을 맡은 것도 그 일환이다. ‘즉시연금’은 금융당국과 업계가 대립하는 이슈인데 보험연구원이 민감한 사안에 의사표시를 하는 경우는 그다지 없었다.

안 원장이 원장이 된 뒤 관심사 중 하나는 ‘보험 CEO’다. 그는 보험 CEO가 밤잠을 설치는가를 곱씹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50곳이 넘는 보험사 CEO에게 일일이 문자와 전화로 안부를 전하며 소통 강화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주 싱가폴 세계보험협회(IIS) 컨퍼런스에서 전 세계 보험 CEO들은 거시적이고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IIS가 2200개 보험사 CEO 대상 설문조사를 했더니 ‘고객 경험의 디지털화’. ‘고령화와 헬스케어’, ‘혁신을 위한 규제완화’, ‘기후환경 변화’, ‘사이버 리스크’ 등이 CEO를 잠 못 이루게 한 테마였다.

국내 업계가 영업 규제 완화나 보험판매 등 단기적 사안에 골몰하고 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안 원장은 “국내 보험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CEO가 거대담론에 대해 고심할 필요가 있지만 재임 기간 단기실적을 거둬야 하는 CEO들이 당장 영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적 한계”라고 했다.

그는 “보험 CEO가 장기 과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도록 단기 성과평가 위주의 평가모델을 바꾸는 연구를 할 계획”이라고 한다. 안 원장은 “대단한 ‘스펙’도 없는 평범한 연구자가 원장이 돼서 잘 할까 하는 시선도 없지 않다”며 “그럴수록 애정과 사명감으로 산업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