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개나무 경작지 무단진입한 포병부대 "국가 배상 책임"

육군 포병부대의 K9 자주포 궤도차량들이 민간인 논밭에 무단으로 진입해 헛개나무와 가시오가피나무 수백 그루를 깔아뭉갰다. 법원은 정부가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법원은 땅 주인이 토지에 나무가 있다는 표식 등을 설치하지 않았고, 당시 겨울이었던 점 등을 들어 정부의 배상책임을 일부 제한했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판사 안성준)은 경기 양평군에서 가시오가피 나무 등을 키우는 A씨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최근 "정부는 A씨에게 6634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판결문의 기초사실을 종합하면, A씨는 2012년 경기 양평군에서 약용작물을 경작하는 농업경영체를 등록한 후 자신의 토지 3500여㎡에 헛개나무 585그루와 가시오가피나무 280그루를 심었다.

그런데 지난 2016년 1월 육군 3군사령부 20사단 산하 포병대대는 A씨의 허락 없이 K9 자주포 등 궤도차량 11대를 A씨의 토지에 무단 진입시켰다. 이틀간 궤도차량들이 토지에서 운행하고 주둔하는 과정에서 A씨가 심은 나무들은 대부분 복구 불능이 됐다. 토지 사방 끝부분엔 헛개나무와 가시오가피 나무가 일부 남았지만 당초 A씨가 식재했던 나무는 온전히 1그루밖에 남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지난 2017년 초 군 자주포들이 가입한 자동차보험회사와 정부 양쪽을 상대로 "둘이 연대해 94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정부와 보험사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법원은 "다른 사람의 토지에 허락 없이 진입해 식재된 수목을 훼손하는 건 정당한 권한이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법행위"라며 "정부 공무원인 군인들은 토지에 자라고 있는 수목이 식재돼 궤도차량을 운전해 진입해서는 안 되는 장소임에도 이를 제대로 살펴보지 않은 채 궤도차량을 운전해 허락 없이 토지에 무단으로 진입했다"고 봤다.

법원은 이어 "군인들은 궤도차량으로 식재된 가시오가피나무, 헛개나무를 대부분 쓰러뜨리는 등 불법행위를 했고, A씨는 식재한 나무를 더 이상 경작할 수 없게 돼 이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궤도차량 운행으로 A씨가 입은 손해를 보험사 역시 정부와 공동해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그러나 법원은 "나무 훼손 당시 동일 수종과 규격으로 다시 심을 경우 원상회복비용은 9478만원이지만 △당시 나무의 잎이 모두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있던 겨울이었고 식재된 수목들이 완전히 자라지도 않은 상태였던 점 △A씨가 토지에 관리되는 수목이 있다는 걸 인식할 수 있는 표지 등을 설치해야 했음에도 이를 게을리했던 점 △사고 직후 살 수 있는 나무가 더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A씨가 이를 제대로 살리지 않은 점 등이 인정된다"며 A씨의 과실 30%를 인정, 6600여만원만을 배상액으로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