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은행보다 은밀해…'검은돈' 몰리는 나라는?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유럽의 시민 활동가가 부자들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탈세하는 것을 풍자하고 있다. /사진=AFP

영국 HSBC(홍콩상하이은행)이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와 1억9200만달러(약 2280억원) 벌금에 합의했다. 스위스 지점을 통해 미국 부자들의 탈세와 돈세탁을 도운 혐의다. HSBC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 고객의 탈세를 위해 세금신고서를 거짓으로 작성한 혐의 등을 모두 인정했다.

미 법무부는 "HSBC가 미 국세청의 눈을 피해 돈을 숨기기 위해 파나마와 영국령 버진제도, 리히텐슈타인 등 조세피난처에서 암호화된 계좌를 사용하는 수법을 사용했다"며 "은닉 규모가 최대 12억6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에 이를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앞서 UBS와 크레디트스위스, 줄리어스 베어 등 다른 스위스 은행도 HSBC와 같은 혐의로 적게는 5억5000만달러(약 6522억원)에서 많게는 26억달러(약 3조830억원)까지 벌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미 경제매체 쿼츠는 "미국인을 위한 스위스 은행의 대규모 탈세 서비스 시대가 종말을 고했다"고 평가했다. '검은돈'을 대신 굴리며 손쉽게 이익을 챙기던 은행들이 철퇴를 맞은 것이다.

스위스 은행 제재한 美, 새로운 조세피난처 등극

얄궂게도 스위스 은행의 조세피난처 지위를 이어받은 것은 미국이다. 와이오밍, 델라웨어, 네바다 등 미국 내 일부 주는 과거 스위스 은행처럼 매우 높은 수준의 비밀유지를 허용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이라도 쉽게 숨기고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미국은 스위스와 달리 일부 특정 국가를 제외하고 금융정보도 공유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저개발 국가에서 부패관료나 범죄자가 돈을 횡령에 미국에 숨기면 찾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의 한 법률회사 변호사는 쿼츠에 "스위스 은행의 일탈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던 미국이 탈세 천국이 되다니 얼마나 부조리한 일인가"라며 "미국이 세계의 돈을 빨아들이는 굉음이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