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체 조각상 보고 바지 내린 40대 "정신 혼미해서…"

2013년 7월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이 경기도 고양시 필리핀참전비를 참배할 때의 모습. 필리핀참전비는 필리핀의 6·25 참전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사진=뉴시스

바지를 내린 채 나체 조각상 앞을 서성인 40대가 공연음란죄 처벌을 면할 뻔했지만, 유죄가 맞다는 대법원 판결로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공연음란 혐의로 기소된 40대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0일 밝혔다.


A씨는 2017년 고양시에 위치한 필리핀참전비 앞에서 바지를 내리고 서성여 행인들에게 성기를 노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필리핀참전비에는 여성의 나체를 표현한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검찰은 A씨가 행인들에게 성적 수치심을 줬다고 보고 공연음란 혐의를 적용했다. A씨는 법정에서 "소변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서 바지를 올리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1심은 유죄를 인정했지만 2심 판단은 달랐다. A씨의 행위가 행인들에게 창피함, 부끄러움을 준 것은 맞지만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고 봤다. 성적 수치심이 있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공연음란 혐의는 성립하지 않는다.


2심은 A씨 행위를 음란하다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 근거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제시한 음란성 기준을 들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미국 법원은 성행위 또는 자위·배설 행위 등을 노골적으로 표현·묘사했는지 등을 기준으로 음란성을 판단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A씨 행위가 음란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 견해다.

이외에 2심 재판부는 A씨가 오랜 기간 조현병을 앓아 행동이 부자연스럽고, 바지를 내린 것 외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참작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판단 아래 2심 재판부는 A씨 행위를 공연음란죄가 아니라 경범죄처벌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옳다고 봤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제1항 제33호는 공개장소에서 신체 주요부위를 노출해 타인에게 부끄러운 느낌, 불쾌감을 준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료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어졌다. 대법원은 나체 조각상 앞에서 성기를 노출한 A씨 행위는 성적 상상을 자극하거나 수치심을 줄 수 있는 행동이므로, 유죄 취지로 다시 재판해야 한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