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마찰에 발목잡힌 '구글갑질 방지법'…"이럴거면 왜 발의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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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애플 등 앱마켓의 '갑질'을 막기 위한 국회의 법안 처리가 연기됐다. 구글이 한미 간 통상 마찰 등을 이유로 법안 심사에 대한 재검토를 요청한 것을 야당이 받아들여서인데 업계는 국회가 구글의 꼼수에 넘어갔다며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구글갑질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구글 "美 정부와 관계 악재 우려"…국회 "유례없는 입법 규제로 법안 보류"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23일 제2차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2소위)를 열고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관련 7개 법안을 심사했으나, 끝내 법안 처리에 시패했다. 법안은 앱 마켓 운영사가 특정한 결제수단을 강제하지 못하게 하고, 콘텐츠의 독점 출시 요구 또한 못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소위원장인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에 대한 정부 부처 간 의견이 다르고,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입법 규제라는 점을 고려해 법안 처리를 보류했다"며 "앱 개발자들에게 규제 도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법안 무산은 구글이 과방위원들과 미리 접촉해 설득한 결과다. 구글코리아는 지난주 몇몇 의원들에게 한미간 통상마찰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법안 처리 재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코리아는 "인앱결제 법안은 한미간 통상 마찰을 야기할 우려는 높은 반면 아직까지 시간적 여유는 남아 있으므로 서둘러 처리하기보다 신중한 검토를 요청한다"며 "최근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도 보호무역 기조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미국기업을 겨냥한 망이용대가 규제 뿐 아니라 인앱결제 규제를 한국이 앞장서 도입한다면 바이든 정부와 초기 외교관계 형성에 큰 악재가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구글은 수수료 인하 카드도 내밀었다. 구글코리아는 "구글 본사 차원의 글로벌 정책 변경이 필요한 사항으로 본사를 움직이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는 바, 그 때까지 법안 처리를 기다려 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수수료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으나, 구체적 시기와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구글은 구글플레이가 도입된 190개국과 논의를 거쳐 이르면 3월, 늦어도 상반기 중으로는 구체적 인하안을 발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성중 소위원장이 지난해 9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산회를 선포하고 있다. /사진=뉴스1.

구글갑질방지법 물 건너가나…업계 "국회가 구글 꼼수에 넘어간 것" 반발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해온 업계는 구글의 설득에 넘어간 국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개정안 심사가 미뤄지면서 법안 자체가 흐지부지되는 게 아니냐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럴거면 애시당초 왜 법안을 만들었냐는 성토이다. IT업계 관계자는 "통상 법안을 처리한 후 시행령을 만드는데 6개월 정도 소요된다"며 "이번 임시 국회내에 구글 관련법이 처리돼야 인앱 결제 적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구글이 상황을 주시하며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라며 "최대한 입법을 막는 전략을 펼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구글은 오는 10월부터 기존 게임외에 음원과 웹툰, 웹소설 등 디지털콘텐츠에도 자사 결제수단과 30%의 결제수수료를 강요해 논란을 빚고 있다. 그동안 네이버, 카카오, 멜론 등 콘텐츠 업체는 각자 결제수단을 사용하면서 구글에게 매출의 10~20% 가량을 수수료만 지불해왔다. 그러나 구글의 결제수단을 적용하면 이들이 구글에 지불할 수수료는 30%로 올라간다.


최근 발표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구글의 30% 수수료 부과 정책이 시행될 경우 올해 비게임분야 수수료는 최소 885억원에서 최대 1568억원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실제 조사 대상 기업 중 35%는 구글의 정책 변경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나타냈으며, 이중 29.9%는 대응 방안으로 소비자 요금을 올리겠다고 밝혀 콘텐츠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 뿐 아니라 소비자까지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를 막는 구글 관련법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다. 홍정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관련 법을 첫 발의한 후 넉 달 만에 법안이 소위에 상정된데다, 지난해 11월 회의에선 구글이 인앱 결제 도입 시점을 올해 1월에서 10월로 연기한 만큼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며 법안 처리를 차일피일 미뤘다.

김재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구글이 한미 통상마찰을 이유로 인앱결제 적용 시행 시기인 10월전까지 법안 처리를 미뤄달라는건 말이 안되는 소리다. 미리 만들어놔야 법을 시행할 것 아닌가"라며 "국내에 전반적으로 인앱 결제 강제 정책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은 조속히 통과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