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으로 정준영-승리 단톡방 못 막는다는데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 및 메신저 단체 대화방 등을 통해 공유한 가수 정준영. /사진=김창현 기자 chmt@

2019년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두 건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 'n번방'과 '정준영 단톡방'에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0일부터 시행된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으로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14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n번방 방지법은 통신의 비밀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적 대화방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오픈채팅방, 공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커뮤니티 등 공개된 온라인 공간에 올라오는 콘텐츠만을 대상으로 한다.


방통위는 "카카오톡 대화방 1대 1톡과 단체톡, 텔레그램 모두 사적 대화방으로 적용대상이 아니다"라며 "검열 이슈와 전혀 무관하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IT(정보·기술) 업계에서는 n번방 방지법의 실효성에 의문을 내비친다.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는 주요 채널인 비공개, 사적 대화방에는 필터링이 적용되지 않아서다.

앞서 가수 정준영은 총 23개의 대화방을 만들어 가수 승리, 최종훈 등 연예계 지인들과 불법촬영물을 돌려본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중이다. 당시 범행은 모두 1대 1 톡이거나 지인들 간의 단체톡으로 이뤄졌는데, 이번 n번방 방지법에서는 이같은 형태의 폐쇄형 사적 대화는 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60여개의 텔레그램 대화방이 운영됐던 n번방 사건도 마찬가지다.


정부도 이 같은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방통위는 "사적 대화방에서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는 문제는 신고·수사를 통해 해결해 나갈 사안"이라고 설명한다.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법령이 제 역할을 못한다는 사실을 자인한 셈이다.

불법촬영물의 재유통을 막자는 취지에 대해서도 업계와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터링 기술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자에 책임을 지우다 보니 결국 일일이 영상물의 내용을 들여다봐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보유한 불법촬영물 DB에 없는 새로운 불법성착취물이 유통될 경우에는 확인도 어렵다. 영상이 불법적으로 촬영된 것인지, 착취 여부가 있었는지 등 주관적인 판단도 필요해 결국 검열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트위터도 이러한 논란과 관련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내 이용자가 올리는 음란물이 무분별하게 유통된다는 지적에 대해 트위터 측은 "내부 모니터링으로 위험 콘텐츠를 모두 다 지워버리는 형태는 100% 건강한 플랫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운영원칙을 위반한 콘텐츠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지만, 나머지에 대해 사전 검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 3월 'n번방 방지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청구한 사단법인 오픈넷도 "인터넷 이용자들의 표현의 자유 침해와 위축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통신의 자유, 프라이버시, 정보접근권 등 다른 기본권 침해로까지 이어지며 인터넷의 문명사적 의의를 몰각시킬 게 자명하다"고 부작용을 지적했다.

실효성이 법안이 시행됨에따라 사적 검열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의 자국민 정보 검열 정책인 '황금방패 프로젝트'가 음란물 차단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한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현행 법으로는 온라인에서 불법촬영물이 유통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며 "진짜 n번방 방지는 경찰이 불법촬영물에 대한 적극 수사에 나서 범죄자들을 빠르게 잡아들이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