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사형 선고"…이들이 '안락사' 원하는 이유는 [dot보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어머니는 4년의 끔찍한 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했다. 투병기간에는 두 차례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정맥주사로만 영양분을 공급받으며 간신히 목숨을 유지했다. 투병 4년 차가 되던 해 우리는 어머니의 마지막이 다가왔음을 깨달았다. 사망 두 달 전 어머니의 폐에는 물이 가득 찼고, 어머니는 밀실공포증과 불안증세 등 '지옥'을 맛봤다. 결국 어머니와 주치의는 영양분 공급 중단 등 연명치료 중단을 결정했다.

#할아버지는 식도암 진단을 받은 뒤 1년 6개월 동안 몸에 호스를 꽂고,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하루하루 고통 속에 살아갔다. 진단 초기 120kg에 육박했던 할아버지의 몸무게는 40kg까지 줄었다. 할아버지는 매일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죽기를 원했고, 우리는 결국 할아버지의 선택에 동의했다.


글로벌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 올라온 "일부 국가에서 조력죽음이 문제 되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주제의 질문에 레딧 회원들은 가족의 조력죽음 사례를 공유했다.

이들 대부분은 살 수 있다는 희망없이 끔찍한 고통을 견디는 가족(환자)의 모습이 보기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조력죽음 대상이 된 환자들도 끝을 모르는 고통을 매일 견뎌내는 것보다 하루라도 덜 아플 때 눈을 감고 싶어했다고 한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통을 견디며 희망없는 삶을 이어가기보다 상대적으로 평온한 시기에 삶의 마침표를 찍고자 조력죽음을 선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일 "안락사(정확히는 조력자살) 결정" 소식이 전해진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도 "특정 나이, 특정 시점부터 우리는 병원이나 생명유지 장치를 거치지 않고 조용히 세상을 떠날 권리가 있다"며 안락사가 가장 논리적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콜롬비아에서 루게릭병을 앓다 지난 1월 안락사로 숨을 거둔 마르타 세풀베다 /사진=콜롬비아 카라콜TV 영상 갈무리

"화려했던 내 인생 간직하고파"…시한부 아닌데도 '죽음' 선택"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아니다. 난 내 인생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2016년 개봉한 미국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에서 불의의 사고로 촉망받던 젊은 사업자에서 전신마비 환자가 된 남자 주인공 윌(샘 클라플린)이 전한 안락사 선택 이유다.

시한부가 아니더라도 의료기술에 의지해 고통 속에서 남은 인생을 살기보단 자신이 사랑했던 삶을 기억한 채 생을 마감하려고 조력죽음을 결정하려는 이들도 있다.

2017년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을 진단받은 아르헨티나의 다니엘 에두아르도 오스트로폴스키는 지난해 미국 NBC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평생에 걸쳐 사형을 선고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안락사로 자신의 삶을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ALS는 근육세포가 파괴돼 전신이 마비되는 질환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고 고통의 강도가 갈수록 커진다. 치료법이 없는 병이지만 병세 진행 속도에 따라 2~10년 또는 그 이상 살 수 있어 시한부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아르헨티나에서는 루게릭병을 이유로 한 안락사가 허용되지 않는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본인 또는 가족 동의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존엄사'만 허용하고 있다.

오스트로폴스키는 "법은 아무런 희망 없이 절망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라며 안락사 합법화를 촉구했다.

한편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안락사가 허용된 콜롬비아에서는 올해 1월 루게릭병을 앓던 50대 여성 마르타 세풀베다가 안락사로 숨을 거뒀다.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세풀베다 역시 시한부가 아니라는 이유로 안락사 승인이 거부됐었다. 콜롬비아는 1997년 안락사를 허용했지만 6개월 이하 시한부 판정 환자의 안락사가 인정했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콜롬비아 헌법재판소가 안락사 권한을 시한부 환자 이외 "심각한 불치병으로부터 심각한 육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받는 환자"에게도 적용된다고 결정하면서 그의 안락사 계획에 길이 열렸다.

이후 그는 지난해 10월 안락사를 계획했었으나 종교계 반대 등에 부딪혔고, 그의 안락사를 집행하려던 통증 연구소가 증상 완화를 주장하면서 안락사 승인이 돌연 취소됐다. 세풀베다는 즉시 법원에 안락사 취소가 부당하다고 항소했고, 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주며 올해 안락사가 집행됐다. 그는 안락사를 허가받은 이후 "평화가 찾아왔고, 잘 웃고 잘 잔다"고 하기도 했다.

조력죽음에 대한 반대 의견도 여전히 있다. 긴 투병생활을 하는 환자를 향한 죽음의 압력이 있을 수 있고, 범죄가 생길 수도 있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생명 경시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크다. 미셸 아우페티 프랑스 파리 대주교는 "사람이 고통에 처했을 때 해결법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덜어주고 함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