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미 수상 불발 'BTS' 실패 아닌 한류 성공의 연장선인 이유

방탄소년단(BTS) 지민(왼쪽부터), 제이홉, 진, RM, 슈가, 뷔가 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제64회 그래미 어워드' 에서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기대를 모았던 방탄소년단(BTS)의 그래미 수상이 불발됐다. 미국 3대 음악상을 모두 석권하는 역사적인 첫 '그랜드슬램'도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워낙 경쟁후보들이 쟁쟁했던 탓에 '버터(BUTTER)'의 존재감이 다소 빛이 바랬다. 하지만 보수적인 그래미에서 본토 주류 팝스타도, 백인 남성도 아닌 아시아 보이밴드가 2년 연속 단골손님으로 주목받았단 점에서 '실패'가 아닌 '성공'이란 평가도 나온다.

3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가스 MGM 그랜드 가든 아레나에서 열린 '제64회 그래미 어워즈(Grammy Awards)'에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은 곡 '키스 미 모어'로 후보에 지명된 미국 가수 도자 캣과 SZA(시저) 듀오가 수상했다. 해당 부문은 BTS가 지난해 최고 흥행곡 중 하나인 버터로 후보에 올라 관심이 집중됐다.


일각에선 BTS의 수상 가능성을 점쳤다. 그래미의 차별과 불투명성을 대표해온 비밀 선정위원회가 사라지는 등 보수적 색채가 짙었던 그래미도 개방되는 분위기가 감지됐기 때문이다. 그래미는 흑인인 드레이크, 여성인 마일리 사이러스 같은 정상급 가수들도 본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지 못할 만큼 유색인종 등 비주류 아티스트들에 박한 시상식으로 악명이 높았다.

무엇보다 지난해 빌보드 어워즈, 아메리칸뮤직어워즈(AMA) 등 미국 최고 권위 대중음악상을 연달아 정복했단 점에서 그래미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4대 본상으로 불리는 '제너럴필즈'에 오르지 못한 만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만큼은 내줄 것이란 관측에서다. BTS 역시 이날 "지난 2년 간 지치고 고통스러웠는데, 그래미를 수상한다면 이를 모두 보상받는 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수상의 영광은 BTS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음악계에선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과였단 평가가 나왔다. 버터가 함께 맞붙은 후보들을 제치기에 다소 부족했단 이유에서다. 그래미는 상업성보단 작품성에 더 초점을 맞추는데, 도자캣·시저 듀오를 비롯해 올해 95세로 역대 최고령자 후보에 오르며 '올해의 레코드상'까지 이름을 올린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 등 뛰어난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민재 음악평론가는 "도자캣의 곡은 2021년을 석권한 스테디셀러로 봐도 무방하고, 베넷의 경우에도 사실상 최후의 작품이나 마찬가지란 상징성이 있는 등 각 후보곡의 작품성과 스토리가 뛰어났다"며 "BTS도 작품성 높은 곡들을 발표해왔지만, 버터는 조금 더 이벤트성이 짙고 흥행성에 방점을 둔 곡인데다 그레미가 보이밴드를 크게 선호하지 않는 경향도 있어 경쟁작에 밀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미 실패? 오히려 성공으로 봐야

방탄소년단(BTS)이 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제64회 그래미 어워드'에 참석해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사진제공=빅히트엔터테인먼트

다만 음악계에선 이번 수상 불발이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코로나19(COVID-19)로 대면공연과 TV쇼 출연 등 활발한 해외활동이 어려웠던 시기에 '히트송' 문법을 따른 버터와, 글로벌 록스타 콜드플레이와 협업한 '마이 유니버스' 등으로 영향력을 키운 BTS의 글로벌 전략은 빌보드와 AMA 석권 등 충분히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정 평론가는 "BTS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빌보드 1위를 하느냐, 그래미를 가느냐의 기로에서 더 영향력을 키우는 방향을 택했는데, 잘 맞아 떨어졌고 동시에 K팝 전체가 흥행하는 결과도 낳았다"며 "아무리 들어가고 싶어도 발들이지 못하는 곳이 그래미인데 2년 연속 입성한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미 입맛에 맞는 제대로 된 정규앨범 등을 들고 나온다면 언제든지 수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BTS가 버터로 그래미 후보곡에 오른 사실 자체가 이례적란 평가도 나온다. 그만큼 BTS와 K팝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뜻이다. 그래미는 백스트리트 보이즈 같은 미국을 대표했던 아이돌 보이밴드들의 상업음악에 단 한 번도 상을 내준 적이 없다. 특히 BTS는 이날 시상식 초반 단독 퍼포머로 무대에 올라 버터를 선보이며 기립박수를 받았는데, 이 역시 그래미와 미국 대중음악계가 BTS를 인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 평론가는 "BTS 뿐 아니라 트와이스가 미국 투어를 굉장히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고, 스트레이 키즈 등 스타들이 영향력을 넓혀가는 등 K팝 시장은 정점으로 향해가고 있다"며 "언젠가 BTS가 그래미까지 수상하게 되면 영미 대중음악에서 영향을 받아 형성된 K팝이 본토에서 인정받는다는 점에서 굉장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