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도 3명이 마크…이영표 "벤투호, SON '부담감' 덜어줘야"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브라질과의 친선 경기 전반전 슈팅을 하고 있다. 손흥민을 마크하고 있는 다니 알베스(13번), 마르퀴뇨스(4번), 카세미루(5)에 티아고 실바(3번)까지. 2022.6.2/뉴스1

"손흥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업적은 200년 뒤에도 남을 것이다. 돌연변이다. 하지만 월드컵을 앞둔 국가대표팀에서는 그만큼 부담감을 가질 거 같다."

이영표 강원FC 대표는 지난달 27일 서울 압구정의 카페에서 '찐터뷰'와 만나 리그 23골로 EPL 득점왕에 오른 손흥민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2002년 월드컵 20주년의 소회를 묻기 위한 인터뷰였지만, 자연스레 손흥민으로 대화 주제가 옮겨갔다. 토트넘 홋스퍼 선배이기도 한 이영표는 그만큼 손흥민을 아끼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한국인 EPL 득점왕은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간 것과 같은 사건"이라고 하기도 했다.


이영표 대표의 걱정은 국민들의 높아진 기대치 속에서 손흥민이 온전히 월드컵의 짐을 다 지는 것에 맞춰져있었다. 과거 대표팀에서는 박지성(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짐을 이영표 대표가 나눠졌었다. 공격 라인은 박지성이, 수비 라인은 이영표가 조율했다. 그런데 현재는 손흥민의 위상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모든 짐을 본인이 져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이 대표는 본인의 현역 시절을 회고하며 "국가대표에서는 다른 선수들이 실수하는 것도 다 나한테 심리적 충격이 오더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팀으로 오면 하나하나 다 신경을 써야 한다. 다른 후배들도 다 챙기고 해야 한다"며 "그러면서도 또 자기 몫까지 다 해야 한다.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의 말 마다 '다'라는 단어가 붙었다. 그만큼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한민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지난 2일 벌어진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1-5로 대패했다. 브라질의 치치 감독은 경기 직후 손흥민에 세 명의 마크맨을 붙였다고 밝혔다. 다니 알베스(FC 바르셀로나), 마르퀴뇨스(파리생제르맹), 카세미루(레알 마드리드) 등 월드클래스 수비수와 미드필더들이 손흥민을 맡았다. 손흥민은 빠른 드리블과 강력한 슈팅으로 분전했으나, 브라질의 강력한 마크에 고전했다.


이영표 대표는 이런 상황을 예견이라도 한 듯 "벤투호가 좀 안 풀린다고 하면 손흥민 한쪽으로 플레이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라며 "최근에는 황희찬(울버햄튼), 황인범(FC 서울), 김민재(페네르바체), 이재성(마인츠 05), 황의조(보르도) 등이 살아나면서 손흥민에 대한 의존도가 분산되기 시작했고, 손흥민의 플레이도 확 살아났다"고 설명했다. 날카로운 예측으로 과거 '점쟁이 문어'로 불렸던 이 대표 다운 분석이었다.

이영표 강원FC 대표 인터뷰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실제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1골을 넣은 장면은 손흥민에게 마크가 집중된 틈을 비집고 나왔다. 마크가 헐거워진 황희찬이 손흥민 반대편인 우측 측면을 공략했고, 좋은 패스를 황의조에게 넣어줬으며, 황의조가 찬스를 그대로 살려 골을 만들었다. 반면 경기가 풀리지 않고 브라질 선수들에게 연거푸 실점하자, 고립된 손흥민은 미드필더 아래까지 내려오며 볼을 직접 배급하는 모습을 보였다. TV 해설진들도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이라고 지적했던 장면이다.

이 대표는 "오른쪽에서 황희찬이 흔들고, 미드필더에서 황인범이 찔러주고, 수비에서는 김민재가 쓸어주고, 이런 게 돼야 손흥민의 플레이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오는 11월 카타르 월드컵에서 상당히 기대해볼만한 선수진"이라며 "내 경험상 월드컵 직전에 하는 3~4번 평가전의 그 경기력이 본선의 경기력으로 직결된다. 아직 월드컵까지 수개월 남았는데도 경기력은 상당히 괜찮다"고 진단했다.

어느덧 20주년이 된 2002년 월드컵에 대해서는 "내 삶을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눈 기준이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자신감을 많이 가지게 된 게 분명하다. 우리가 '두려움'을 깬 첫 번째 세대였다"며 "우리에게 사대주의가 있었잖나. 강자 앞에서 주눅드는 그런 게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은 그런 것들을 넘어서는 계기가 됐다. 세계와 당당하게 맞서서 이기려고 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 대표는 "우리 사회가 분열돼 있다는 점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정치적, 계급적, 이념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열된 사회 속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게 2002년 월드컵"이라며 "2002년 월드컵은 서로가 '괜찮다'고 하고, 상대를 포용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이게 스포츠의 힘이고 축구의 힘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대한민국과 브라질의 친선 경기에서 황의조의 골이 나오기 직전 상황. 손흥민이 있는 왼쪽에 수비가 집중된 틈을 타 황희찬과 황의조가 브라질 수비라인을 공략했다. 경기는 1-5로 한국의 패배./사진=쿠팡플레이 유튜브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