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커볼케 전무, "그랜저 디자인은 백자·조약돌서 영감 얻어"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 현대디자인센터장/사진=현대차

"간소화할수록(Simplifying)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루크 동커볼케 현대자동차 현대디자인센터장(전무·51)이 디자인 학도들을 대상으로 자동차디자인 철학을 펼쳤다.

동커볼케 전무는 현대차 (242,000원 ▲500 +0.21%)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와 지난달 공개한 '신형 6세대 그랜저'를 디자인했으며 피터 슈라이어 현대기아차 디자인총괄 사장, 이상엽 현대차 현대디자인센터 스타일링담당 상무와 함께 현대차 디자인 3인방으로 통한다.

그는 지난 1일 서울 강남구 언주로에 위치한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강연을 통해 "어떤 것을 빼는 것이 추가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며 "간소화할수록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람의 얼굴에서 2~3가지 라인(선)만 기억하듯 자동차 역시 라인이 과하지 않나 스스로 질문해봐야 한다"며 "복잡한 디자인은 순수하지 않고 오래갈 수 없으며 최소한의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미래의 자동차디자이너들에게 조언했다. 이밖에 좋은 디자인의 요소로 혁신성, 실용성, 아름다움, 솔직함, 디테일을 꼽았다.


강연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루크 동커볼케입니다"라는 한국말로 시작했다. 지난해 11월 현대차에 영입됐으니 한국에서 산 지 딱 1년이 됐다. 영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는 물론 아프리카 스와힐리어까지 7개 국어를 구사하지만 아직 한국어는 서투른지 이후는 영어로 말했다.

그는 "디자인은 단순 생산이나 전달이 아니라 열정"이라며 "제 일이 저의 정체성이며 자동차가 제 인생(My work is my identity. Car is my life)"이라고 했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했고 본업은 자동차디자이너지만 스피드카를 직접 모는 카레이서이기도 하다. 자동차디자이너의 일은 "오전 7시에 시작해서 저녁 7시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고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루크 동커볼케(51) 현대차 현대디자인센터장(전무)이 1일 서울 강남구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그랜저 디자인을 설명하고 있다./사진=황시영 기자

현장에서 그는 신형 그랜저를 스케치북에 '쓱쓱' 그리며 디자인을 설명했다.

그랜저(Grandeur)는 프랑스어 발음인 '그란더'로 부른다고 했다. 그란더는 웅장함(magnificence)을 뜻한다. 그는 "람보르기니가 이탈리아인의 문화이고 포르쉐가 독일인의 문화라면 그랜저는 한국인의 문화고 명차"라며 "신형 그랜저에 백자, 조약돌 등 한국의 장인정신을 반영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조약돌 그림을 보여주며 "그랜저 디자인의 핵심은 단순하면서 유려하게 물 흐름에 따라 깎인 조약돌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웅장함과 위엄이 있으면서도 고급스럽게, 자연스럽게 '흐르는' 느낌을 주고자 했다는 것.

강연 후 질문이 쏟아졌다. "다른 브랜드에 있을 때 현대차의 이미지는 어땠느냐"는 질문에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이내 "지금 현대차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변화를 주도하는 기업)"라고 답했다.

그는 "1998년부터 2006년까지 람보르기니에서 일했는데, 당시 유럽에서 TV를 사면 소니 혹은 파나소닉이었고 삼성, LG는 사람들이 잘 몰랐다"며 "오늘날 삼성, LG TV를 먼저 찾게 된 것은 이들이 '게임체인저'가 됐기 때문인데 현대차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당시 현대차는 주요 완성차업체라고 할 수 없었지만 '쏘나타 YF'가 등장하면서 브랜드의 프로필이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한국에 온 지 1년된 감회를 묻자 "이탈리아는 10년 뒤 가도 한 장소가 그대로인데 서울은 한 달만 지나도 바뀌어 있다"며 "서울은 계속 새로운 것을 원하는 도시며 정말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고 했다.

한국은 그가 18번째 사는 나라다. 부모님을 따라 '글로벌'한 성장기를 보냈다. 태생은 페루, 국적은 벨기에, 학창시절은 아프리카 세네갈·르완다 등지에서 보냈다. 미국 아트센터 디자인대학 자동차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자동차디자인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아우디·스코다·푸조 디자이너를 거쳐 람보르기니 디자인담당, 세아트 디자인담당, 벤틀리·부가티 디자인총괄을 지냈다. 레드닷디자인상을 비롯해 세계적인 디자인상만 15차례 받은 자동차디자인의 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