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전기차 의무판매 추진"…車업계 이미 규제 포화

정부가 '전기차 의무판매제' 도입을 추진한다.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국내 자동차 제조사 대표들에게 미세먼지 등에 대응하기 위해 '전기차 의무판매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자동차 업계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전기차 판매 확대를 위한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이 안됐고, 한국은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특수성도 감안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기존의 규제도 충족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새 규제는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분석이다.


◇환경부 장관 "대기오염 심각…전기차 의무판매 고려"= 김 장관은 28일 오전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열린 ’자동차 배출오염물질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식‘에서 기자들을 만나 "(전기차 의무판매제도) 도입은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아직 생산량이 적지만 적극 생산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이날 국내 완성차 5개사 대표, 한국자동차산업협회·한국수입자동차협회 대표 등이 참석한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전기차 의무판매제 도입 가능성을 전달했다. 김 장관은 "이미 국내 업체들이 수출할 때 수입국의 쿼터제(전기차 의무판매제)를 따르고 있어 크게 무리하는 부분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자동차 업계 대표들에게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보다는 우리나라의 대기질 확보를 위해 쿼터제를 따를 수밖에 없다"며 "수출에서는 쿼터제를 따르지만 우리나라에서 못하겠다는 방식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의무판매제는 각국에서 시행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에서 시행되고 있고, 최근 중국도 전기차 의무판매 도입을 발표했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2025년부터 내연기관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다. 국내에도 2030년 내연기관 판매금지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김 장관은 "우리나라 미세먼지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자동차 업계가) 규제를 계속 유예 요청하는 것은 적극적인 자세가 아니다"고 말했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LW컨벤션에서 열린 ’자동차 배출오염물질 저감을 위한 자발적 협약식‘에서 김은경 환경부 장관과 자동차업계 대표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 박한우 기아자동차 사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김은경 환경부 장관, 카허카젬 한국GM 사장, 박동훈 르노삼성 사장, 정재희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 /사진=김남이 기자

◇車 업계 대표들, 인프라도 없는데…'규제 포화 상태' = 자동차 업계 대표들은 김 장관의 친환경차 보급 정책의 취지에는 동의했으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기차 의무판매제 도입은 이르다는 반응이다.

정재희 한국수입자동차협회 회장은 비공개 간담회에서 김 장관에게 "(전기차 의무판매의) 취지는 좋지만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등이 있어 굳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이미 규제가 있어 이중규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말했다.

카허 카젬 한국GM 사장은 더 나아가 기존의 환경규제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는 "2020년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7g/km로 낮추는 것은 매우 힘들다"며 "환경부와 업계가 관련 규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

특히 친환경차 관련 인프라 부족은 큰 문제로 지적됐다. 인프라 구축이 늦어지면서 정부가 세운 전기차 판매 목표의 절반도 달성하기 힘든 상황이다. 올해 정부는 전기차 판매 3만대 목표를 세웠지만 업계는 1만대 정도만 판매될 것으로 본다.

정진행 현대차 (250,000원 ▼2,500 -0.99%) 사장은 김 장관에게 "환경부가 그동안 노력했지만 아파트 중심의 주거형태 등으로 인해 충전 인프라 구축이 늦어지고 있다"며 "민간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이 자동차 생산국인 것도 감안할 부분이다. 박한우 기아차 (116,700원 ▲500 +0.43%) 사장은 내연기관 판매금지를 발표한 노르웨이와 네덜란드는 자동차 수입국임을 지적하며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 자동차 생산국가는 관련 논의를 2040년 이후로 미뤘다는 예를 들었다.

박 사장은 "자동차는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충분한 준비기간이 없으면 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규제를 도입할 경우 자동차 산업 전반을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김 장관에게 건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