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I 사장 "대규모 투자해달라" vs. 정부 "한국GM 경영정상화 계획부터"

배리 엥글 GM 총괄 부사장 겸 해외사업부문(GMI) 사장(왼쪽 4번째)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한국지엠대책TF 위원장 등과 간담회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사진=이동훈 기자

배리 엥글 GMI(GM인터내셔널) 사장이 20일 "한국 시장에 머물고 싶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significant investments) 및 구조조정 활동이 포함된 '회생 계획'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GM을 구조조정하면서 우리 정부의 투자를 받고 싶다는 뜻이다. 반면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우리 정부는 "GM의 경영정상화 계획부터 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대규모 투자 요청에 당장 화답하지 않았다.

한국GM의 생사 여부를 판가름하는 GM의 최고경영층이자 대표격인 엥글 사장은 지난 19일 방한했다. 지난해 연말 방한에 이어 세차례 연달아 한국을 찾고 있는 것이다.

◇GM "대규모 투자, 구조조정 필요" vs. 김 부총리 "GM부터 계획 달라"=엥글 사장은 2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방문, 홍영표 환경노동위원장을 비공개 면담했다. 이어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등과 논의를 이어갔다.

그는 이후 국내 기자들과 일문일답에서 "한국에 머물고 경영상황을 개선하고 싶은 것은 GM의 '최우선 선호사항(preference)'"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마련한 '회생 계획'이 작동돼야 한다.


회생 계획은 '상당한 대규모 투자(significant investments)'와 새 제품(신차 배정), 구조조정을 포함한다. 우리는 사업환경 개선을 위한 방법을 모든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찾아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정부의 투자와 한국GM의 구조조정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엥글 사장은 이어 "회생 계획을 위해 GM은 GM의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으며, 한국GM 노조와 한국 정부에 도움을 청하고 있다"며 "한국 정부와 협상과 관련해 나중에 더 적당한 시기에 이야기하겠다. 세부 사항은 비밀"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한국 정부로부터 만족할만한 지원을 얻지 못한다면 완전 철수인가'라는 질문을 받고도 '경영환경 개선'을 강조했다. 그는 "경영환경을 개선하고 한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이 되고자 하는 것은 최우선 선호사항"이라며 "경영환경 개선이 되려면 많은 일들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상으로 인해 매우 고무돼 있으며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성태 자유한국당 대표 등에 따르면 엥글 사장은 이날 면담에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신차 두 종류를 부평, 창원 공장에 투자(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한국GM의 생산량이 연간 50만대를 밑도는데, 앞으로 50만대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엥글 사장의 발언에 따르면, 이 투자는 한국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하는 것이 된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2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중견기업연합회에서 진행된 '현장소통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김휘선 기자

우리 정부는 GM의 경영정상화 계획과 투자 의지를 먼저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한국GM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국GM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계획을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영 정상화를 위한 협의에는 정부도 성실하게 임할 생각"이라며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체적 계획을 보고 판단해야 하고, 실사도 선행돼야겠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엥글 사장을 만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엔 "만날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9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GM이 그동안 불투명했던 경영에 대한 문제를 해소해야 하며, 장기적 경영 개선에 대한 GM의 커미트먼트(투자 의지) 그런 것들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했다.

백 장관은 정부와 GM 간 협상에 대해 "아직 실무진 단계에서 하고 있는데 외국인투자기업에 대한 인센티브는 전체적인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맞춰서 봐야 한다"며 "상계 관세 문제도 있어서 그런 측면을 봐야 한다"고 밝혔다.

◇"GM, 1조원 한국에 요청"=로이터 통신은 내부 소식통을 인용, 한국GM이 본사에 진 부채를 주식으로 전환할테니 한국 정부가 이를 지원해달라는 안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GM 본사가 한국GM이 본사에 진 부채 22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주식으로 교환하는 출자전환을 제안하고, 대신 한국 정부의 금융 및 세금 혜택 등 지원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GM이 한국에 요청한 지원금 규모는 10억달러(약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소식통은 한국GM의 공장 일대를 외국인투자지역으로 지정해 7년간의 세제혜택 지원도 요구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은 GM 본사가 제시한 출자전환은 한국GM의 영업을 계속 하겠다는 의지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국GM의 지분 17%를 보유한 KDB산업은행이 이번 제안에 얼마나 흥미를 보일지는 의문이라고 전했다.

엥글 사장은 앞서 작년말 방한해 KDB산업은행, 정부 관계자들을 잇달아 만났고, 1월 초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지난 7일 입국해 한국GM 노조와 유정복 인천시장을 차례로 면담했다. 이번에는 지난 19일 방한해 20일 국회에 이어 부평 공장을 찾았다.

엥글 사장은 지난해 10월 GMI 사장으로 취임, 미국 및 중국 사업을 제외한 모든 해외사업장을 총괄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한국GM 관련 구조조정 업무를 집중적으로 총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