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포비아'에 시달리는 유통가

롯데가 2013년 서울시로부터 매입한 상임 DMC 복합쇼핑몰 부지. 롯데는 서울시가 인근 상인들과의 합의를 전제로 사업 인허가를 계속 미루자 최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유통가가 온통 규제 걱정이다. 새 정부가 골목상권 등 약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어 점포 출점, 영업 등과 관련한 규제가 더 강화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새 정부 첫 여당 원내대표에 '을 보호'에 앞장서 온 우원식 의원이 선출되고,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등 재벌 개혁을 역설해온 인사들이 경제팀 핵심 포스트에 포진하면서 우려는 더 깊어지고 있다.


각 기업, 협회할 것 없이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파악하느라 동분서주 하는가하면, 반박 논리 등 대응책 마련에도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통업계가 새 정부 댓바람부터 규제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규제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우리나라는 중소 상인과 자영업자 보호를 위해 2009년 8월 사업조정제도 도입(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에관한법률)을 시작으로 전통상업보전구역 지정제 도입(2010.11, 전통시장 반경 500m이내 출점제한), 의무휴업 및 영업시간 규제 도입(2011.12) 및 강화(2013.1) 등 유통산업과 관련한 규제를 강화해왔다. 규제 대상은 매장면적이 3000㎡(907.5평) 이상인 대규모 점포, 3000㎡ 미만 이더라도 대규모 점포를 경영하는 기업 등이 운영하는 점포로 음·식료품을 위주로 하는 종합판매 소매점(준대규모 점포) 등이다.

규제 강화는 저성장 국면의 소비 침체, 온라인 유통 시장의 급성장 등과 맞물리면서 백화점 대형마트 등 기존 유통 강자들의 내리막길을 앞당기는 결정타가 됐다. 산업통상자원부 '유통업계 매촐 동향 조사' 통계에 따르면 대표적인 규제인 의무휴업/영업시간 제한이 도입된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형마트(이하 주요 업체 매출 합계 기준)는 5년 연속 역성장(-3.3%,-5.0%, -3.4%, -2.1%, -1.4%) 했다. 백화점도 같은 기간 제자리 걸음 수준에 그쳤다. 준대규모 점포로 의무휴업/영업시간 규제를 똑같이 받는 기업형슈퍼마켓(SSM)도 산업부가 별도 통계를 잡기 시작한 2014년 부터 -3.3%, -1.3%, -0.8% 등으로 3년 연속 뒷걸음했다. 신규 출점도 백화점 대형마트 SSM 모두 한해 10개를 채 넘기 힘들 정도로 저조하다.

이에 반해 규제에서 자유로운 유통 채널들은 점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1인 가구 등 간편 소비 트렌드와 맞물려 주목받고 있는 편의점은 지난해 역대 최고 수준인 4300개 점포(상위 5개사 합계)가 늘어난 데 이어 올해는 4월말까지 넉달동안 1820개가 늘었다. 같은 속도가 유지된다면 연말까지 올해 한해 5460개 점포가 생기는 셈이다. 음·식료품을 주로 팔지 않아 역시 규제 대상 점포가 아닌 헬스&뷰티숍(H&B숍)도 점포가 크게 늘었다. 업계 1위인 올리브영은 2014년 말 417개 이던 점포수가 2년여만인 올해 1분기말 현재 868개로 두 배를 넘어섰다. 이 분야 후발업체인 롯데, 신세계 등 기존 유통 강자들도 H&B 채널 강화에 나서고 있다. 규제 정책에 따라 유통부문의 산업지도가 다시 그려지고 있는 셈이다.

기업만큼 민감하진 않지만 규제는 사실 소비 생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우리 집 근처에 백화점, 대형마트, SSM이 들어오느냐, H&B, 편의점이 생기느냐의 차이다. 지역 경제와 일자리가 크게 영향 받는 것도 물론이다.


규제는 기본적으로 시장을 인위적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면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영향이 클수록 더 그렇다. 유통 산업 규제가 골목상권 보호이라는 규제의 목적에 부합하는 순기능이 큰지, 일자리, 지역 경제 활성화, 소비자 권익 제고 등의 기회가 막는 역기능이 큰지를 잘 따져봐야 한다. 유통업계의 '규제 포비아(공포증)'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