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진의 증권반세기]전국 지점망 구축, 증시 대중화

삼보증권이 1973년부터 추진한 전국적인 지점망 구축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대중화를 앞당기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대전지점은 대구지점과 동대문출장소에 이어 73년 8월 9일 세 번째 지점으로 문을 열었다. 사진은 개점식을 마치고 나오는 필자의 모습(가운데 정면을 향해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한 발 앞서간 삼보증권 지점 개설, "지점 없이는 지방 투자수요 못 잡는다"
투자의 3원칙이라고 하면 수익성과 안전성, 환금성을 가리킨다. 투자자라면 모름지기 이 세 가지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사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우량주는 장기적으로 수익성과 안전성은 어느 정도 확보돼 있다. 그러나 환금성이 떨어진다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배당밖에 기대할 수 없다.

발행시장이 아무리 커지고 많은 우량기업이 새로 주식시장에 상장된다 해도 환금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발행시장과 유통시장은 자동차의 앞뒤바퀴와 같다.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호보완 관계인 것이다. 게다가 유통시장이 성장하지 않으면 주가 조작 같은 시세조종 행위가 판을 칠 수 있다. 1960년대 각종 파동과 책동전이 가능했던 근본 원인도 따지고 보면 유통시장이 워낙 작았기 때문이다.


삼보증권은 누구보다 먼저 발행시장에 진입해 기업 공개 주선 업무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72년 8.3 조치를 계기로 정부의 증권시장 육성 의지는 충분히 확인했다. 그렇다면 이제 유통시장을 확대할 차례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대중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당시 증권회사들 대부분이 이렇게 유통시장이 커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남이 먼저 시작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것이 삼보증권의 정신이었다. 돱반드시 해야 할 일은 남보다 먼저 해야 한다.돲 내가 삼보증권 직원들에게 늘 강조했던 말인데, 나중에 이를 삼보증권 DNA라고 불렀다. 미래의 비전을 바라보고 먼저 시작하면 다른 회사들도 따라오게 돼있다.

이즈음 내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전국적인 지점망 구축도 그랬다. 당시 증권업계에서는 69년 부산 증권거래소 개설 후 일부 기관투자가들이 부산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었으나 개점휴업 상태였고, 사실상 명동에 본점만 둔 채 지점은 하나도 없는 실정이었다.


증권업도 서비스업일진데 지점이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마음먹고 증권 투자를 하려면 명동까지 나와야 하고, 게다가 지방 사람은 사실상 증권 투자의 길이 막혀 있는 셈이었다. 은행 지점은 집에서 나와 몇 백 미터만 가도 있는데, 증권회사는 명동에만 있다면 고객에 대한 서비스는 물론 증권회사의 영업도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시장 대중화나 개인 투자자의 저변 확대는 공염불에 그칠 터였다.

◇73년에 6곳 개설해 4년만에 30개로..1~2년만에 흑자내자 너도나도 개설붐

1970년대 중반 증권회사 지점의 전형적인 풍경. 증권회사 직원은 객장에 설치된 시세게시판에 주가를 적고 있고 고객들은 이를 지켜보고 있다. /사진=금융투자협회

나는 서울은 물론 지방에도 삼보증권 지점망을 갖추기로 하고 73년 1월 8일 대구에 출장소를 처음으로 개설하고 3개월만에 지점으로 승격시켰다. 증권업계를 통틀어 실질적인 영업점 형태를 갖춘 최초의 지점이었다. 곧이어 4월 9일에는 서울의 동대문시장 인근 건물 3층에 동대문 출장소를 열었는데, 서울에서의 첫 지점 개설이었다.

그리고 7월에는 소공동 지점, 8월에는 대전 지점과 부산 지점, 10월에는 을지로 지점을 개설해 73년 한 해에만 6개 지점을 새로 열었다. 이어 74년에는 5개 지점을, 75년과 76년에는 16개 지점을 새로 개설해 77년에는 출장소를 포함해 30여개의 전국적인 지점망을 구축하게 됐다.

요즘 증권업계에서 구조조정이라 하여 지점을 통폐합하고 있는데, 그 시절을 회고해보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에는 지점을 하나 개설하려면 적지 않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적어도 1년은 적자가 불가피했다. 영세한 증권회사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적자가 나는 영업점을 낸다는 게 쉽지 않았다.

사실 은행 지점의 경우 개설과 동시에 예금을 받고 대출도 해줄 수 있지만 증권회사 지점은 개설 후 본격적인 영업을 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일반 투자자들에게 증권 관련 지식을 설명해주어야 하고, 각종 투자 상품의 장단점도 일일이 알려주어야 한다. 게다가 당시 지점에서 취급할 수 있는 국공채나 공사채는 종류가 많지 않아 주식 한 가지만으로 영업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그냥 대도시를 중심으로 번화가에 사무실 얻어 지점 간판을 내건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이로 인해 사내에서도 지점 개설에 회의적인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나는 앞을 보고 밀고 나가라고 독려했다. 당장 눈앞의 이익만 따질 것이 아니라 앞으로 국내 자본시장이 발전하면 이 정도 희생은 충분히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내 신념이었다.

마침내 개점 후 1~2년 정도 지나면서 흑자를 기록하게 됐다. 그러자 다른 증권회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삼보증권 지점에 고객들이 모여들고 영업 실적도 괜찮다고 알려지자 지점 개설을 주저하던 증권사들이 앞다퉈 지점 설치에 나선 것이다. 한번 경쟁이 붙기 시작하자 어느새 과열을 우려할 정도로 증권회사 지점이 늘어났다.

결국 재무부가 중재에 나서 지점 설치 기준을 만들기에 이르렀는데, 일정 구역에 몇 개 이상의 신규 지점 개설은 안 된다는 식으로 일종의 교통정리를 해준 것이다. 이미 개설한 지점이 많았던 삼보증권은 경합이 붙으면 다른 증권회사에 양보해야 할 때가 많았다.

삼보증권 입장에서는 전국적인 지점망 구축에 앞장 서고도 상대적으로 손해를 본 셈이었지만, 나는 한 발 더 나아가 비도시 지역까지 지점을 늘려나가도록 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계속 발전해 나갈 것이고, 이런 추세라면 주식시장 대중화가 본격화할 80년대에는 군청 소재지에서도 증권회사 지점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내 판단이었다. 당시 읍에 불과했던 충남 논산에 지점을 개설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74년 업계 처음으로 '증권저축' 시작해 주식 대중화 효과..RP도 첫 개발

1972년 8.3 조치를 계기로 주식시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높아지면서 증권회사 객장을 찾는 주부들의 발길도 부쩍 늘었다. /사진=금융투자협회

지점 개설과 관련해 한 가지 잊지 못할 일화가 있다. 당시 문을 연 지점마다 다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는데, 가령 동대문 출장소는 상인들이 밀집해 있는 동대문 상권지역을 한번 뚫고 들어가 보자는 의도였고, 소공동 지점은 그 무렵 사채시장의 중심이자 금융기관들이 몰려 있어 신규 고객을 개척하는 데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다. 그런데 광화문 지점은 이와 조금 달랐다.

74년인가 일본 출장 길에 노무라 증권에 가서 주요 지점을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도쿄의 관청가인 토라노몽(虎ノ門)에 있는 지점을 보여주었다. 그곳은 번화가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도 아니었다. 그래서 왜 거기에 지점을 냈느냐고 물었더니 관료들이 출퇴근할 때 고객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니까 공무원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지점을 냈던 것이다. 나는 노무라 증권의 판단에 공감이 갔다. 공무원들이 삼보증권과 거래한다면 그야말로 최고 엘리트 고객을 확보하는 셈이었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광화문 네거리에 지점을 개설하고 삼보증권 간판을 내걸었다.

전국적인 지점망 구축과 함께 내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게 증권저축 업무였다. 정부에서는 증권 투자 인구의 저변 확대를 위해 72년 10월부터 증권저축 제도를 시행했는데, 처음에는 한국투자개발공사만 취급할 수 있었다. 내가 보기에 증권저축은 투자 수요 확대는 물론 증권회사의 고객 기반을 넓히는 데도 필요한 수단이었다.

나는 재무부에 왜 증권회사가 증권저축을 취급할 수 없는지 물었다. 재무부는 결국 요건을 갖춘 증권회사에 한해 인가를 내주었고, 삼보증권이 제일 먼저 74년 1월부터 증권저축을 취급하게 됐다. 초창기에는 기대만큼 가입자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았지만 70년대 중반 이후 증권저축은 주식시장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환매조건부채권(RP)을 처음 개발한 것도 삼보증권이 아니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2차 오일쇼크가 강타한 78년 말로 기억하는데, 자금사정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무더기로 발행한 회사채를 인수해 새로운 방식으로 일반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던 것이다. 당시 회사채 상환기간은 2년이었지만 삼보가 처음 개발한 환매채는 투자자가 원할 때면 언제든 증권회사가 다시 사들이는 식이었다. 투자자들은 여유자금을 단기로 굴리면서도 높은 금리를 얻을 수 있었고, 증권회사는 회사채 인수에 들어간 자금도 회수하고 새로운 환매채 상품에서 수익도 얻을 수 있는 구조였다.

문제는 은행 예금이나 투자신탁의 수익증권 같은 상품을 증권회사가 판매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재무부에 이를 제도화하도록 건의했다. 그렇게 해서 80년 2월 환매채 매매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계기로 회사채가 증시에서 활발하게 유통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튼 70년대는 주식시장 대중화에 기초를 다진 시기였다. 증권업계는 고난의 터널과도 같았던 60년대를 빠져 나와 증권 인구의 저변 확대를 기반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해나갈 수 있었다.

(17회는 공모주 청약 붐과 건설주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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