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면도 염치도 없는 야만의 나라

많은 사학자와 철학자들이 우리 선조들의 얼을 '선비정신'에서 찾는다. 선비정신은 체면과 염치가 첫 번째다. 체면의 사전적 뜻은 '남을 대하는 도리, 또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떳떳할 만한 입장이나 처지'다. 염치는 '체면을 생각하거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요즈음 우리나라의 형국을 보자면 타자에 대한 배려는 고사하고 체면이나 염치를 쥐꼬리만큼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남녀노소 막론일 뿐만 아니라 특히 나이 들면서 자연스레 얻어지는 것이 관용과 성찰이라는데 오히려 사람 형상을 뒤집어 쓴 짐승으로 둔갑한다.

상대방과 의견을 다투더라도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될 말, 해야 할 행동과 해서는 안될 행동이 있다. 그것이 관용과 배려고 체면과 염치를 지키는 것이다. 자식 잃은 젊은 아비의 목숨 건 단식 앞에서 보란 듯이 튀긴 닭을 먹으며 아들 뻘의 그를 조롱하다 못해 빨리 죽으라는 사람들. 이게 나라인가? 이게 관용이고 성찰인가?

아마도 지금의 우리를 보면서 환호성을 올릴 나라는 중국과 일본일 것이다. 그들은 속으로 이런 우리를 '이제 보니 형편없는, 유사시 정벌하는 것은 땅 짚고 헤엄치기'라며 비웃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옛 것에서 의로움을 구해 오늘의 답을 찾는다'는 고금통의(古今通義)가 절실한 이유이다.

'고금통의'의 저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일제식민사관에 전적으로 대항하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우리 역사가다. 그가 지금까지 펴낸 역사책만 백 권에 근접하고 있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조선 왕 독살사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정조와 철인정치의 시대' 등 주목 받는 저서만 나열하기도 벅차다.


그가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역사를 빼앗기면 다음 차례는 땅을 빼앗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남북간 전쟁을 벌였던 1950년 10월 중국은 서남공정으로 티베트를 정벌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동북공정에 여념이 없다. 대륙을 지배했던 고조선의 역사를 실종시키고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둔갑시키고 있다.

'고금통의'는 저자가 중국과 일본의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우리의 역사,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축소하고 왜곡해 놓은 우리의 역사의 진면목을 간결, 담백한 에세이로 조각조각 풀어낸 책이다. 대한민국 중심의 동아시아 역사가 씨줄날줄로 엮였다. 1, 2권을 모두 읽고 나면 대륙을 향해 앞발을 쳐들고 포효하는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지도가 보인다. 우리의 영산 백두산을 지키고 싶다면 관용, 배려, 체면, 염치가 있는 나라로 개조되어야 한다.

◇이덕일의 고금통의= 이덕일 지음. 김영사 펴냄. ①권 512쪽 ②권 520쪽. 각 권 1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