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감정기복 너무 심한 대한민국 '정신감정'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인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글항아리)에서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진행되다가는 자본 소유의 집중도가 높아져서 세습자본주의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책이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도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상 박탈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5만 부, 미국에서 25만 부 팔린 책이 한국에서는 연말까지 10만 부는 넘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올해 한국 사회를 가장 크게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세월호 참사’다. 지난 4월 16일에 이 참사가 터졌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 국민 모두 이 땅에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하며 사태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불과 6개월이 지난 지금,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사람들은 ‘유민 아빠’를 비정한 아빠로 내모는 등 과도한 감정자극을 연속적으로 해댔다. 양극단의 감정 다툼에 지친 사람들은 이제 이 참사를 기억에서 지우려 하고 있다.

지난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이뤄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우리 사회에 깊은 감동과 성찰의 기회를 줬다. 교황의 말씀 한마디와 일거수일투족은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그러나 두 달여가 지난 지금, 우리는 교황이 다녀갔다는 사실조차 잊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영화 ‘명량’은 1800만에 가까운 전대미문의 관객을 올 여름 극장가로 이끌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거나 “바다를 버리는 것은 조선을 버리는 것”이라는 영화 속 이순신 장군의 신념에 찬 ‘말씀’을 들으며 수많은 사람이 장군의 리더십에 매료됐다. 그러나 여름이 끝나기도 전에 ‘명량’에는 ‘리더십’ 대신 ‘리더’와 ‘쉽Ship’만 남았다는 자조 섞인 우려가 등장해 많은 설득력을 얻었다.

1000만 영화에서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백성을 하늘처럼 섬기는 왕, 진정 그것이 그대가 꿈꾸는 왕이라면 그 꿈 내가 이뤄 드리리다”나 “그대들이 말하는 사대의 예, 나에겐 사대의 예보다 내 백성들의 목숨이 백 곱절 천 곱절 더 중요하단 말이오!”란 심금을 울리는 대사에 감동받았던 ‘광해’(관객수 1232만)나 “국가는 곧 국민”이라는 변호사의 변론에 눈물을 흘린 ‘변호인’(관객수 1137만)도 벌써 잊힌 지 오래다. 세 영화는 이른바 ‘백성 마케팅’ 영화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의 화두는 단연 ‘감정’이다. 문제적 사안이나 문화 트렌드에 대한 깊은 천착과 탐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에 크게 들끓었다가 바로 식어버리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거의 모든 미디어는 일시적인 감정조작마저 서슴지 않는다. 이렇게 감정을 낭비적으로 소비하다가 곧바로 배설해버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과연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적어도 이 해가 가기 전에 이들 사안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토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