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시간을 통제할수있다면 '우주'와 '나'는 하나가 된다

우주를 소재로 한 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만나왔지만, 이처럼 실생활에 적용될만큼 실감나는 체험기는 처음이다. 3시간이나 이어지는 긴 우주 여행은 그것이 우리와 분리된 판타지 세계의 즐거움이 아니라, 우리가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업보라는 생각으로 귀결될 정도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치밀한 과학적 근거와 광활한 스케일의 영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예리한 스토리로 관객들의 눈높이를 한 차원 끌어올린다.


황사가 비처럼 떨어져 농작물을 더 이상 생산할 수 없게 된 인류는 이제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과학자보다 농부가 더 중요한 세상에서 과거 1등 파일럿이자 엔지니어인 쿠퍼(매튜 맥커너히)는 중력 이상 현상을 보이는 황사의 쌓임에서 좌표를 읽고 비밀리에 숨겨진 미국항공우주국(NASA)을 찾아낸다. 그곳에선 인류의 미래를 담보할 새 행성 찾기 프로젝트가 극비리에 진행중이다.

쿠퍼는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하고 이 프로젝트에 합류한다. 영화는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손이 발표한 ‘웜홀’(worm hole·두 시공간이나 동일 시공간의 두 곳을 잇는 좁은 통로)을 통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우주 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이미 확인했지만, ‘인터스텔라’에서 보여주는 우주 여행의 과정들은 더 포괄적이다. 단순히 우주선 안에서 벌어지는 이벤트에 국한하지 않고, 한번도 시도하지 않은 신비로운 우주 이론을 실천으로 옮기는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다른 은하계로 진입할 수 있는 ‘웜홀’을 통과하기도 하고, 다른 행성에 도착하기위해 부족한 연료를 대신할 방법으로 블랙홀에 과감히 뛰어들기도 한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의 객관성을 확보하기위해 킵손이 직접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킵손은 “모든 서사는 입증된 과학적 지식 내에서 전개되며, 인간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성적으로 추측 가능한 선에서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행성에서의 1시간이 지구의 7년에 해당해, 아깝게 써버린 3시간으로 21년이 훌쩍 지나 아들과 비슷한 나이가 돼 버린 쿠퍼의 반전인생, 두려움과 긴장에 쌓인 인간들을 위로하는 지능 로봇 케이스와 타스의 활약 등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잔재미다.

영화는 긴장감을 싣고 블록버스터의 모양새를 띠며 거대하게 움직이는 듯하지만, 놀란 감독이 특별히 주목하는 건 시간과 인간의 함수 관계다. 사람들이 시간을 주관적으로 경험한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여긴 놀란 감독은 우주에서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을 인간에게 숙제로 안겼다.

수수께끼같은 중력의 비밀을 풀어, 시간을 자유자재로 이용해볼 수 있는가하는 문제의식을 던진 셈이다. 쿠퍼가 블랙홀의 5차원에서 바라보는 3차원의 지구, 그 속에서 그가 해답을 찾은 건 순간이 지배하는 시간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총체적 시간이다. 이 반전은 놀란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중요한 철학적 메시지를 읽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포스트모너니즘의 선구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저서 ‘알렙’에서 거대한 우주는 우주 속에 보이지 않는 원소같은 ‘나’와 다르지 않고, 나는 곧 우주의 거대함과 등가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듯, 놀란 감독 역시 우주와 나의 일체를 통한 합일에서 시간을 거역하고 완성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중력을 거스르고 우주를 이기는 힘은 결국 ‘나’ 자신에게 있는가. ‘메멘토’에서 소멸을 통해 생성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인셉션’에선 상실이 곧 획득이라며 극과 극의 연결고리를 전해준 놀란 감독.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 살게 될지도 모를 우리의 삶도 결국 파국이 아닌 희망의 씨앗으로 향할 것이다.

11월5일 개봉. 35mm 필름과 아이맥스, 2D 디지털, 4D 영화관. 러닝타임 169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