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의 책통]내년에도 이어질 역사를 활용한 성찰의 축제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가 처음으로 국정화된 것은 1974년이다. 국사 교과서가 검인정으로 바뀐 것은 민주화, 세계화, 선진화된 추세가 어느 정도 진전된 200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40년이나 지나서 교육부는 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하나의 교과서라야 국론 분열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역사교육을 교육의 안목이 아니라 이념의 잣대로 본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참고로 국정 국사 교과서가 있는 나라는 북한, 쿠바, 베트남 등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교육부의 역주행에도 불구하고 올해 대중은 역사를 갖고 발랄한 상상을 했다. 나는 작년 말에 2014년의 트렌드로 ‘추억의 반추’를 내세웠다. 인간은 어려울 때마다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 되니 늘 복고 트렌드가 뜬다. 올해도 그랬다. 우리 역사가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올해는 모든 세대의 삶이 힘겨웠다.


그래서일까. 올해 문화 시장에서는 역사라는 추억을 반추하고자 하는 욕망이 폭발했다. 작년 연말에 개봉된 영화 ‘변호인’이 연초에 1000만 관객을 가벼이 넘기더니 여름에는 영화 ‘명랑’이 1800만에 가까운 전무후무한 관객을 동원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조선미녀삼총사’ ‘군도’ ‘역린’ ‘해적’ 등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가 줄을 이었다.

연초에 시작된 드라마 ‘정도전’은 여름에 막을 내릴 때까지 ‘정도전 신드롬’을 일으켰다. 많은 이가 평가하듯 정도전의 혁명은 미완이었다. 그는 토지개혁이라는 ‘경제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노비해방이라는 ‘합리적인 고용’은 실패했다. 정도전의 경세지략은 박근혜 정부의 공약 이행여부와 맞물리면서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와 드라마가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키면서 이순신과 정도전을 다룬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휴머니스트)이 꾸준한 인기를 얻었으며, 역사에 대한 주관적인 입장을 자유롭게 개진한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돌베개)도 인기를 끌었다. 유시민의 주장대로 역사 서술의 핵심인 ‘사실의 해석’과 ‘역사 서술’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아베 정부가 ‘위안부’의 강제적 동원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쏟아낸 것과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의 위안부에 대한 망언도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해 깊게 성찰하게 만들었다. 요나스 요나손의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이상 열린책들), 성석제의 ‘투명인간’과 한강의 ‘소년이 온다’ (이상 창비) 등은 역사를 바라보는 주관적 관점이 가져다주는 발랄한 상상과 재미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내년에도 역사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성찰해보는 데 도움이 되는 문화 상품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양극화에 따라 평범한 시민이 느끼는 고통이 더욱 심각해지는 지금, 그들이 도피할 곳으로 역사라는 공간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