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톡톡]‘올해의 밥상’

내가 북서울에서 일하던 2009년에 홍대 앞 문화예술상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한 실험예술가하고 술을 먹다가 그 분이 사스(SARS)에 임대료 상승 등으로 홍대 앞 예술가들이 많이 힘들어한다고 해서 즉석에서 기획해 만든 예술동네 상이었다. 매년 말 홍대 앞 6개 단체 대표가 심사해서 3년을 계속했는데 나름 화제가 됐었다. 그 후 나도 떠나고 예술가들도 하나 둘씩 떠나면서 상은 이어지지 못했지만 나는 그렇게 만들어진 상의 아름다운 힘을 확인했었다.


홍대 앞 예술가들 상이다 보니 자연 시상식 분위기는 엉뚱함과 폭소, (예)술 범벅 분위기였는데, 대상을 받았던 한 갤러리 대표는 상을 받자 2층 객석을 보면서 “아부지 어머니, 제가 머리털 나고 처음 받아 본 상이에요”라며 좋아했었다. 상에는 초연할 것 같았던 인디예술가도 상을 좋아하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신인류상이란 것도 있었는데 괴짜에게 주는 상이다. 상금은 돈 자루에 500원짜리로 50만원. 우중독보행이라는 자칭 시인 수상자가 무거운 돈 자루를 받고 난감해 하는 표정에 욕까지 하니 객석에서는 웃음보가 터져 나왔었고, 와우 북 페스티벌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모 아나운서 겸 기상 캐스터 수상 때는 각 방송국 기상 캐스터 미녀들이 총출동해서 미인 한마당을 이루기도 했었다.

이렇게 상 자리(賞床)는 훌륭한 자리다. 상(賞)엔 자리(床)가 있고 자리엔 상이 있어야 흥이 난다. 그 홍대 앞 문화예술상은 별명이 ‘술상’이었다. 술자리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상이기도 하고 예술가 상이기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시상식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술상(賞)이며 술상(床)이었다.

나는 한때 술상을 만들었으니 이번엔 밥상을 기획해본다. 아내가 준비하는 밥상(床)에 주는 밥상(賞). 집에 있다 보니 아내가 매 끼마다 “아, 오늘 저녁은 뭐하지?” 고민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밥상을 준비하는 것이 꽤 힘들다는 걸 느끼게 되면서 생각한 거다. 조선을 설계한 삼봉 정도전은 고려 말 권신 이인임에게 좌천당해 유배생활을 하면서 가난한 백성들의 밥상을 보고 ‘세끼 밥은 백성의 하늘’이란 기가 막힌 깨달음을 얻었는데, 한 집 식구들은 500년 전의 그 귀한 깨달음을 잊으면 안 될 것이다.


식구(食口)할 때 구(口)는 막연히 입 모양이 아니고 예전에 하늘에 제사지낼 때 쓰는 제기 모양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식구는 같은 하늘을 모시는 식사 공동체를 뜻하기도 하는 것이다. 백성에게 그 하늘이 뭐겠는가? 일 년 내내, 매번 다르게 나타나는 밥상의 하늘이다. 그러니 하루 세끼를 다 찾아먹는 남편은 ‘X끼’란 욕을 먹는 것이다. 하늘을 힘들게 했으니.

밥상은 하늘이며 또한 예술 작품이다. 1식 3찬을 하더라도 일 년 내내 매번 다르게 하기가 얼마나 어렵겠나? 그러니 밥상이 바로 반복과 차이의 설치예술이다. 설치 작품이 별건가. 밥상은 그날 한 끼로 끝나는 순간의 설치 퍼포먼스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전시회 벽에 설치하고 앤디워홀이 콜라 병 쭉 늘어놓거나 마릴린 먼로 사진을 칼라만 달리해서 쭉 늘어놓고 예술이라고 한 걸 보라.

하루 삼시, 일 년 4계절의 변화, 남편과 자식의 다른 입맛을 헤아려 만드는 아내의 밥상이 훨씬 어려운 작품인 것이다. 요리는 이미 창의적 예술의 반열에 올라 있고 창의력을 키우려면 자식들에게 직접 요리하는 걸 시키라고 하는 시대다. 그러니 밥상머리 남편들과 자식들은 한해가 끝날 때 아내, 엄마에게 ‘올해의 밥상(賞)’을 주어야 한다.

하늘이며 작품이며 창의의 자리인 밥상에게 주는 올해 최고의 상. 이 밥상은 연말이면 TV에 쏟아져 나오는 그들의 상하고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사뭇 다를 것이다. 그래도 심사는 해야 하니 밥상이 작년보다 좋았으면 골드 밥상, 그게 아니면 실버 밥상 최악이면 동(발음을 세게 하면 안 된다.) 밥상. 부상으로는 하늘을 보듯 작품을 음미하듯 밥 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