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에 우리의 길이 있다

유럽 역사에서 1453년은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해인 1543년과 맞먹는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년도를 구성하는 숫자 4개까지 일치한다. 1453년을 한마디로 압축하면 ‘실제로 배가 산으로 갔던 해’이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공략 중이던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메흐메드 2세는 보스포루스 해협의 톱하네 해안에서 해발 61 미터의 페라 언덕을 넘어 골돈혼의 카슴파샤 해안까지 수 킬로미터의 길을 내 70여 척의 함대를 골돈혼으로 진입시키는 무지막지한 작전으로 유럽의 심장을 침몰시켰다. 팍스 로마나에 이은 팍스 오스마나 시대의 개막이었다.


영국 최고 권위의 논픽션 상인 ‘BBC 사무엘 존슨 상’으로 빛나는 저자 브랜든 심슨의 역작 ‘유럽(EUROPE)’은 ‘1453년부터 현재까지 패권투쟁의 역사’가 부제다. 메흐메드 2세를 뒤이어 오스만투르크 제국을 유럽의 힘으로 부상시킨 쉴레이만 대제로부터 시작해 카를 5세, 엘리자베스 여왕, 루터, 칼뱅, 크롬웰, 나폴레옹을 거쳐 비스마르크, 히틀러, 고르바초프, 사담후세인, 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중세, 근대, 현대사를 두툼한 두 권의 책으로 신나게 관통한다.

우리가 유럽의 역사를 잘 알아야 하는 이유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이 한반도 장기판에 둘러앉아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절반인 러시아와 미국이 유럽의 역사에 들어 있어서다. 그 유럽의 속성을 알아야 우리의 갈 길을 제대로 짚을 수 있어서다. 세계사의 주류인 그들의 역사적 진행 과정에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당장에 저자는 신성로마제국으로 뿌리가 닿는 독일이 ‘유럽의 힘’의 노른자위인 이유는 중부유럽을 장악했던 세력이 유럽을, 나아가 세계를 지배해 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독일은 주변국들의 견제로 통합도 늦었고 분단도 당했지만 서독의 지혜롭고 일관된 외교정책으로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당연히 독일은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번역가 곽영완은 터키 전문가로 보인다. 그가 이전에 번역한 ‘터키 민족 2천년 사’,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터키 건국의 아버지’, ‘이스탄불의 황제들-세상의 중심에서 세계를 지배한 주역들’도 상당히 권할 만한 책들이다. 늘 하는 말이지만 ‘비잔틴, 콘스탄티노플, 이스탄불’이 한 도시의 세 이름이란 것을 미처 모르는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유럽(EUROPE) 1,2’=브랜든 심스 지음. 곽영완 옮김. 애플미디어 펴냄. 1권 500쪽/ 2만4000원. 2권 598쪽/ 2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