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박스]겨울은 우릴 또 놓아준다

머니투데이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가

언제부턴가 겨울을 나는 것이 꽤 힘들게 느껴졌다. 두꺼운 외투에 거추장스러운 목도리, 모자, 장갑, 건조한 공기, 까칠한 피부. 온도를 올리고 가습기를 곳곳에 놓아둔다. 최대한 따뜻하고 쾌적한 환경으로 만들어보려고 애를 쓰지만, 겨울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여전히 마당의 나무들은 앙상하고 나는 움츠린다.

얼마 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으로 3관왕에 오른 영화 <보이후드>를 보았다. 영화는 배우들의 12년이란 세월을 한 작품에 담아냈다. 6살 남자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 영화는 18살의 청년이 되어 끝이 난다. 감독과 제작진, 배우들은 일 년에 한 번씩 만나 3~4일간 촬영해 15분 정도의 분량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부모의 이혼과 재혼, 새로운 학교로의 전학과 새 친구들과의 갈등, 첫사랑의 애틋함과 아픔 등 영화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실제로 커가는 소년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자신을 투영시킨다.

하루빨리 어른이 되길 바랐던 그 시절. 어른이 되어 내 의지대로, 자유롭게 살 수 있길 간절히 원했던 그때. 엄마의 잔소리가, 선생님의 훈계가, 수많은 규율과 제약이 거추장스러워 다 던져버리고 싶었던 시절. 얼음처럼 차가운 어른들 틈에서, 뿌옇게 서리가 낀 창문만큼이나 불투명하고 모호한 세계 속 수 많은 모순들 속에서, 해답을 찾고 대답을 바라던 날들.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언제쯤 난 날개를 펼 수 있을까?

영원할 것만 같던 영화 속 아이의 어린 시절은 그러나 어느덧 지나가고 다 커버린 아이는 엄마의 곁을 떠나 이내 어른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곤 자연에 섞여 시간의 영속성에 대해 조용히 읊조린다. “순간을 붙잡으란 말이 있지. 근데 난 그 반대인 것 같아. 우리가 순간을 붙잡는 게 아니라, 순간이 우릴 붙잡는 거지.” “시간은 영원하잖아. 늘 지금이 순간인 거지.”

얼어붙은 나무, 서리 낀 창문, 멈춰있는 것만 같던 시절. 이 모든 것은 다 변하고 지나간다. 어느덧 봄이 오려 한다. 영화 속 대사처럼 순간이 우릴 붙잡는 것이라면 이제 겨울은 우리를 놓아주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