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조홍근의 내 몸 건강 설명서] 밥을 먹었는데 오히려 힘이 없어지고 어지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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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식사 잘했는데, 먹고 난 후 맥이 풀리고 힘이 쭉 빠지면서 어지러워 잘 일어나지도 못하겠어요. 무슨 병에 걸린 건가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힘 내려고 밥을 먹었는데 오히려 힘이 빠지니 불안하고 걱정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런 현상을 식후 저혈압(postprandial hypotension)이라고 합니다.


원래 식사 후 1시간 정도는 혈압이 올라갑니다.위에 들어오는 음식물을 소화하고 영양분을 받아들이기 위해 많은 양의 피가 필요하기 때문에 식후에는 몸의 피들이 대부분 위장과 십이지장으로 몰립니다. 상대적으로 몸의 다른 곳 특히 근육으로 가는 피가 일시적으로 줄어듭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음식물을 소화하기 시작하면 근육으로 가는 혈관을 수축시켜 그쪽으로 가는 피를 최소화하고 나머지 피를 위장, 십이지장으로 흐르게 물꼬를 터줍니다. 그래서 식사 후에는 혈압이 올라갑니다. 이게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이 반응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소화기관으로 많은 피가 갔는데도 근육으로 가는 혈관을 제때 수축하지 못하면 혈관 안에 피가 찰랑찰랑 차게 되고 그 결과 혈압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뇌입니다. 뇌는 체중의 2%도 안 되면서 전체 피의 15%를 가져갑니다. 분당 750mL의 피가 뇌로 갑니다. 밥을 먹든 꿈을 꾸든, 멍 때리든 열심히 공부하든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양입니다. 얼마나 많은 양인지 조금 실감나게 설명하자면 가만히 앉아 있을 때 허벅지로 가는 피는 근육 100gram당 1분에 2~5ml입니다. 그런데 뇌는 가만히 있어도 50ml입니다. 10배 이상입니다. 뇌는 늘 이 정도 피를 필요로 합니다. 불이야 하는 소리를 듣고 죽기 살기로 달릴 때, 허벅지가 쓰는 피의 양이 이 정도입니다. 이럴 때는 뇌로 피가 덜 갑니다. “정신없이 달린다”는 말은 상당히 과학적이지요.

밥을 먹어 소화기관으로 많은 피가 몰려도 뇌로 가는 피를 유지하려면 근육으로 가는 혈관이 닫혀야 합니다. 그래서 혈압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문제가 있어 근육으로 가는 혈관이 제대로 닫히지(수축하지) 않으면 뇌로 가는 피도 덩달아 모자라게 되므로 힘이 없어지고 머리가 핑 돌면서 무기력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일 때 그런지 살펴봅시다.


1. 가공된 탄수화물 음식을 많이, 빨리 섭취할 때
소장은당 지수가 높은 탄수화물을 매우 빨리 흡수됩니다. 덩달아 인슐린도 다량 분비되는데 인슐린은 혈관확장 작용이 강해서 근육으로 가는 혈관도 다 열어놓아 뇌로 가는 피를 줄입니다. 인슐린뿐 아니라 장에서 분비되는 다른 여러 호르몬들도 혈관을 확장시킵니다. 포도당이 주로 그렇고 과당이나 유당 등은 이런 증상과 관련 없다고 보고되었습니다.

2. 갈아 만든 음식, 유동식을 먹을 때
갈아 만든 음식은 입, 식도, 위장을 엄청나게 빨리 통과하여 미처 소화 준비가 안된 소장에 와르르 도착합니다. 음식물이 소장과 접촉하는 면(표면적)이 넓을수록 식후 저혈압이 더 잘 발생합니다. 특히 과일주스처럼 당 지수가 높은 유동식을 먼저 먹으면 식후 저혈압 위험이 높습니다.


4. 노인, 당뇨병, 자율신경장애
이 모든 것은 자율신경계의 반응저하 또는 이상반응으로 오는 현상입니다. 자율신경계의 기능이 약해져 있는 노인, 당뇨병성 신경병증, 파킨슨씨 병을 앓는 사람일수록 식후 저혈압이 더 많이 옵니다. 특히 당뇨병 환자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식후 저혈압을 겪으면 저혈당이라고 오해해서 당이 많은 음식을 더 섭취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식후 고혈당과 저혈압만 더 심하게 만드는 악습관입니다. 혈당이 90mg/dl 이상이면 저혈당이 아닌 저혈압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이가 많고 당뇨를 앓는 데다가 식사 조절을 잘하지 못하고 밥이나 빵 등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는 사람은 이런 증상이 쉽게 나타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식후 저혈압을 예방하고 대처하려면 소장에 탄수화물, 그중에서도 포도당을 최대한 늦게 적게 천천히 시간차로 도착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식습관을 들이면 좋습니다.

1. 당 지수가 높은 탄수화물(떡, 면, 빵, 과일주스)등을 피하거나 아주 나중에 섭취하고 단백질과 섬유질, 지방부터 섭취합니다. 지방은 당 지수를 낮춥니다.
2. 음식은 적게, 여러 번 나누어 천천히 먹습니다.
3. 딱딱한 음식부터 먼저 섭취합니다.
4. 식전에 커피를 마십니다(혈관 수축 작용이 있습니다).
5. 식전에 물을 마십니다(역시 이때 물은 신기하게도 혈관 수축 작용을 있습니다).
6. 식후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면 누워서 다리를 위로 올려줍니다.
7. 식후 저혈압 증상이 나타나려 하면 일부러 몸을 움직여줍니다(걷거나 뛰는 등). 그러면 몸이 운동한다고 받아들여 혈압을 올리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