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 박스] 아버지의 마음

<노예12년>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미국의 한 흑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백인에게 납치돼 노예로 팔려가 12년간 참혹한 노예 생활을 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바로 전 날까지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보내던 남자는 하루아침에 노예의 신분으로 전락하게 된다. 여기저기 팔려 다니고 주인에게 매를 맞아가며 모진 수모를 당하는 처지로 자그마치 12년이라는 세월을 노예로 살게 된다.


백인의 부당한 행위에 울분한 남자가 참다못해 그를 폭행한 후, 그 죄로 목에 밧줄이 묶인 채 까치발로 목숨을 지탱하는 장면에선 그 참혹함이 극에 달한다. 그렇게 짐승보다 못한 삶을 이어가던 남자는 우연히 한 캐나다인의 도움을 받아 자유를 되찾는데 성공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인간에의 존엄과 인격이 철저히 무시 당한 채 자유를 빼앗겼던 사실에, 그리고 그것을 행한 주체가 다름 아닌 인간이라는 것과 이런 행태가 당연시 되던 시대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몸서리쳐졌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무렵 나를 울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오랜 참혹한 시간을 버티고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과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의 남자 대사였다.

“I apologize……”, “Forgive me”

문을 열고 들어서자 12년간 사라진 남편을 기다린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그를 맞이하고 있다. 아이들은 그 세월을 증명하듯 훌쩍 커 버렸다. 그런 가족을 보며 솔로몬의 입에서 나온 말은 ‘보고 싶었다’도, ‘너무 괴로웠다’도 아닌 ‘미안해’, 그리고 ‘용서해줘’라는 말이었다.


오랜 세월 갖은 수모를 당하며 억울하게 버텨왔다. 그만큼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치료받길 원했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을 향해 처음 내 뱉은 그 한마디에는 자신의 모진 고통보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괴로움이 담겨있었다. ‘노예’라는 말할 수 없는 억울함과 치욕을 겪고도, 12년간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기고도, 그리고 그것을 극적으로 되찾고도, 집에 돌아오자 그는 다름아닌 ‘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중략)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는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어린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