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책통] ‘하버드 마케팅’ 앞으로도 통할까?

“여자와의 잠자리에서도 300개의 근육, 250개의 혈관, 208개의 뼈를 더듬고 암기하는 하버드 의대생들. 포르말린 냄새나는 딱딱한 학문에 갇히기보다는 사랑의 격류에 휘말리기를 원하는 의대생들의 학문의 길, 사랑의 길, 인간의 길”


김영사는 1991년에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생들의 치열한 사랑과 고뇌를 그린 에릭 시걸의 장편소설 ‘닥터스’를 펴내면서 이 카피로 책의 라디오 광고 시대를 열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책의 ‘하버드 마케팅’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김영사는 2010년에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표지에 “하버드대 20년 연속 명강의”라는 카피를 넣어 ‘하버드 마케팅’의 재미를 봤다.

하버드 마케팅의 시발점은 1978년에 출간된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었다. 주인공 하트가 하버드 법대의 킹스필드 교수를 만나서 많은 깨달음을 얻고 그의 딸과 사랑을 하게 되는 존 제이 오스본의 소설은 드라마와 영화로 더 알려졌다.

지금도 ‘하버드 새벽 4시 반’(웨이슈잉, 라이스메이커)이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최고의 대학이 청춘에게 들려주는 성공 습관”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은 “모두가 잠을 자고 있는 시각인 새벽 4시 반, 하버드의 도서관은 빈자리 하나 없이 가득 차 있다. 도서관뿐만 아니라 학생식당, 복도, 교실, 심지어 보건실에서도 하버드의 학생들은 저마다의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의 성과를 과연 ‘타고난 천재성’ 덕분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가 핵심 내용이다.

내친 김에 한 온라인서점에서 ‘하버드’로 검색하니 514권의 책이 나왔다. ‘나와 마주서는 용기’(로버트 스티븐 캐플런, 비즈니스북스)에는 “하버드대 10년 연속 명강의”, ‘행복의 조건’(조지 베일런드, 프런티어)에는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하버드의 생각수업’(후쿠하라 마시히로, 엔트리)에는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느리게 더 느리게’(장샤오헝, 다연)에는 “하버드대 행복학 명강의”, ‘공부책’(조지 스웨인, 유유)에는 “하버드 학생들도 몰랐던 천재 교수의 단순한 공부 원리” 등의 부제가 붙어 있다. 모두 작년 이후에 출간된 책들로 반응 또한 좋았다.

최근 출간된 ‘공부의 배신’(윌리엄 데레저위츠, 다른)의 부제는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로 ‘하버드’를 부정적으로 마케팅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Excellent Sheep’인데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의 유명 대학들이 학생들을 말을 잘 듣는 ‘똑똑한 양’으로 만드는 현실을 비판했다.

최근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이 저임금의 임시직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아 학력을 최고의 스펙으로 여기는 분위기마저 식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과연 ‘하버드 마케팅’이 통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