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 박스]모든 일엔 타이밍이 있다

한 달 전 그날도 엄마와 난 일상의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과일을 먹고 있었다. 강아지가 침을 흘리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마음이 약해진 엄마는 수박과 포도 두 알을 건네주셨다. 성격 급한 강아지는 말릴 새도 없이 꿀꺽 포도를 삼킨다.


부끄럽게도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잘 알지 못했다. 포도가 강아지에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의사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형견이니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크게 걱정하지 않은 게 사실이다. 때마침 방문한 손님과의 대화에 정신이 팔려 한 시간이 훌쩍 지난 후에야 문자를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거기엔 ‘당장 토하게 하세요’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나는 그제서야 강아지를 데리고 가까운 병원으로 뛰었다. 토하기엔 너무 늦었다고 했다. 포도는 이미 위로 넘어갔을 것이고 독이 몸에 퍼질 수 있다고도. 각자의 면역력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는데 죽을 수도, 멀쩡할 수도 있다고 했다. 더욱 기막힌 건 포도중독의 치료약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당장 입원 조치에 들어갔다. 강아지는 약을 먹고, 케이지에 갇힌 채 양쪽 다리에 주사를 맞았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치를 하고는 포도가 몸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초조함과 불안함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메르스로 인해 격리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이 한 것이라곤 의심 없이 병원을 방문한 것이 전부다. 우연히도 메르스 환자와 가까이 있었고, 이내 격리됐다. 일부는 죽음까지 맞이했다. 강아지에게의 포도중독처럼 메르스는 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도, 경미한 감기 정도의 증상을 일으키게도 할 수 있다. 그것도 힘들고 긴 잠복기간을 거쳐야만 한다.


메르스가 처음 나타났을 때, 정부는 위험을 감지했지만 늑장대응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키웠다. 안일한 대응으로 인해 일파만파 퍼진 메르스는 남편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게 하고 아버지의 장례도 치르지 못하게 했다. 설마 하는 한 순간의 방심이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대한민국을 불안과 긴장 속에 떨게 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강아지는 별 탈 없이 퇴원을 했다. 하지만 포도를 삼킨 지 한 시간 안에 조치를 취했더라면 입원을 하는 일도, 초조와 불안감에 밤을 지새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일엔 타이밍이 있다. 메르스의 놓쳐버린 골든타임이 더없이 안타까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