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황량한 삶, 버려진 것들에 대한 사랑법

시를 읽다 보면 그 삶의 궤적이 그대로 드러난 시를 볼 수 있다. 온몸으로 체험한 육화된 시다. 시의 형식에서 요소요소에 장치를 숨겨놓은 복잡한 내막을 보물찾기하듯 하나씩 벗겨가며 읽는 재미도 좋지만, 온몸으로 밀고 나간 시가 진정한 감동과 긴 여운을 준다. 거기에 덧붙여 시대적 배경과 기존의 틀에 반기를 들고 무던히 벗어나려는 흔적은 시의 생명을 무한대로 확장한다.

최근 복간된 김신용 시인의 ‘버려진 사람들’이 그렇다. 1988년 ‘현대시사상’에서 처음 발간한 김 시인의 첫 시집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하필이면 죄인이 된 싸가지 없는 우리들은 삼청교육에 대한/반성문을 썼다 囚番으로 살아 있는 생에 대하여/그 껍질 허물 벗어야 할 사회에 대하여/이 황송한 은혜의 시간 베풀어 준 국가에 대하여/온갖 미사여구의 참회의 눈물 얼룩진 반성문을 쓰고 나면/폐방의 어둠 자물쇠가 걸리는 저녁,”(‘모스크바에서의 하루’ 일부)

군사정권인 5공화국은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이름으로 삼청교육대를 창설해 수없이 많은 사람의 인권을 짓밟으며, 극심한 생명의 위협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많은 선량한 시민과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온갖 고초를 당했다. 이 시집은 삼청교육대의 극악한 고통의 세계를 빠져나온 체험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절을 겪지 않은 독자도 국가의 폭력과 그로 인한 고통스러운 아픔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어린 나이에 부랑자로 떠돌았던 김 시인은 하찮게 생각하는 버려진 것들에 대한 측은지심을 시에 담았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바라보면 언제나 막막했던 시멘트의 벌판, 서로의 체온으로 천막 삼아 추위를 이겨야 했던 날들…, 그 황량한 삶 속에서 모든 버려진 것들을 사랑해야 했던 나의 사랑법”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시인이 추구하고자 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삼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시집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다.


시집해설을 쓴 이숭원 문학평론가는 김신용 시에 대해 “오랜 세월 동안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면서 그 뼈를 깎는 괴로움 속에서도 그토록 밝은 사랑의 정신과 눈부신 감성의 눈길을 그대로 지녀왔다는 사실이 눈물겹도록 놀라웠다”고 말한다.

서정시에 익숙한 독자들은 그 강렬함에 ‘시적 불편’을 느낄 것이다. 그 불편의 원천은 체험에서 나온 시인의 깊은 내공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간 그의 시를 읽은 독자라면 얼마나 큰 행운과 맞닥뜨리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시집은 ‘천년의 시작’에서 2003년 복간되었으나 절판됐다가 시 전문 계간지 ‘포엠포엠’에서 두 번째 복간됐다. 그는 현재 ‘환상통’, ‘도장골 시편’ 등 여러 권의 시집과 소설을 집필하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