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쳐톡톡] 인노비를 아시나요?

지난주 두 개의 한국 이야기를 들었다. 하나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위대한 70년 여정에 대한 대대적인 방송 언론 홍보와 통일 한국의 비전 제시였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 프로그램은 가슴이 아팠다. 야당 대표는 통일한국으로 5만 달러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도 했다. 부산에서 네덜란드까지 이르는 대륙 간 횡단 노선의 개통에 관한 스페셜 프로그램엔 가슴이 뛰었다. 위대한 여정을 향한 또 하나의 과제, 대륙으로.

또 하나 한국도 봤다. 아마도 진짜 한국은 이 모습일 것이다. 주말에 고등학교 동기들을 몇 만났다. 요즘 대규모 적자로 이슈가 된 모 조선업에 다니는 친구도 있었고 국내 굴지의 은행 지점장으로 있는 친구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한국 경기와 은퇴 후, 정년 연장 얘기가 나왔다. 얼굴들이 어둡다.


한국 기업들 현황으로 화제가 옮겨 내가 한국 기업 임원들의 충성화 경향에 대해서 좀 비판적으로 말했더니 지점장 친구가 대뜸 내 말을 받았다. “너, 인노비 몰라?”, “???”, “ 인사, 노무, 비서실... 이 3개부서가 충성부서인데 CEO들은 이 자리에 자기 측근들을 박지.”, “그래? 그럼, 그들이 미래 비전을 짜고 고객 가치 창조에... 생산성 올리는 거냐?”, “순진하긴. 무슨 일을 하려면 자기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앉히는 게 인지상정 아니야? 그래야 뒤도 봐주지.” 나는 졸지에 순박한 사람이 되어 “그러니까 한국 금융권이 경쟁력 바닥이지.”라고 톤을 높여 되받았지만 이게 금융권만은 아닌 모양인지 옆에 같이 했던 두 친구도 지점장 친구 말이 맞을 거라고 했다. “어쩔 수 없잖아. 일을 하려면 조직을 장악해야 하고 조직을 장악하려면...”

돌아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장을 장악하고 미래를 준비하라고 했더니 조직을 장악하고 자기 앞날만 준비하는 데만 열정인 한국 (대)기업들이라니. 기업들 책임이 꽤 커졌는데 이런 CEO와 임원들이 대륙 간 횡단 열차를 개통하려는 큰 구상이나 통일 한국 비전에 관심이나 있을까? 화성에 인류 거주라는 꿈을 꾸며 달리는 테슬라의 엘론 머스크 등은 얼마나 황당한 인간으로 보일까? 창조가 어려우면 차라리 독일의 인터넷 기업 ‘로켓 인터넷’처럼 ‘빠른 복제와 먼저 풀칠하기(Speed Copy& Paste) 전략’으로 가는 제 2단계 모방전략 구상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한국 (대)기업들이 2008년 이후부터 상당히 방어적인 태도로 변했다. 돈만 쌓아놓고 움직이지를 않는다. 사내 유보 700조에 현금자산 170조에 수입과 투자는 줄고. 사회적 책임, 일자리 창출하면 그때만 움직이는 척 한다. 선대들의 사업보국과 불굴의 정신은 이제 망각되고 있으며, 10년 전 쯤 ‘블루오션’이론으로 업계가 논쟁에 휩싸였던 기억도 이젠 가물가물하다. 일부 혁신 기업들을 빼면 대부분은 남들이 다 했던 레드 오션 패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100세 시대 도래에 쫄은 임원들은 영리한 자들부터 충성과 근면 경쟁, 그리고 은퇴 후 생존에만 올인한다. 살아남은 자가 결국 강한 자라며. 친구들은 말한다. “전문직이 아닌 한 관리직들은 나가면 어려워. 너 돈 많아? 아니면 충성으로 버텨야 돼.” 물론 이 처연한 엔딩 멘트에 공감하지만 그런데 이거 하려고 우리가 젊은 시절을 그렇게 보냈나. 인노비? 헐- 넌 뭐냐. 좀비가 진화한 거냐?

지난주 만난 두 개의 한국, 하나는 대륙으로 뻗는 꿈, 하나는 인노비 한국. 둘 다 우리의 자화상이지만 무엇이 결국 우리가 살아남는 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