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9월 27일 러시아에서 벌어진 '고려인 강제이주'

1937년 9월 27일 가을 하늘이 유난히 밝고 빛나던 날이었다고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 등교했고 직장인들은 각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기 전, 직장인은 직장 일이 끝나기 전, 이들은 모두 학교와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라는 통보받았고 명령에 따랐다. 이제부터 학교와 직장에 나오지 말고 열흘 안으로 모든 짐을 꾸리고 다음 명령을 기다려야 했다. 이들은 모두 러시아에 살고 있는 조선인(고려인)이었다. 왜 그런 통보를 받았는지 이유도 모르고 학교를 떠나는 슬픔과 설움, 직장을 그만 다녀야 하는 고통을 맛보야 했다.


이게 1937년 러시아 연해주 우스리스크에서 강제 이주한 시발점이다. 그 후 열흘이 지나고 이들은 모두 40차량이 넘는 기차를 타고 머나먼 여정길에 오른다. 아니 짐승처럼 실어 나른 것이었다. 그렇게 무려 33일을 달려 카자흐스탄 열사의 나라에 도착했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의 수는 17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1860년 러시아가 연해주를 합병하고 처음으로 조선인이 온 것은 다섯 가구였다고 한다. 함경북도 국경 지역에서 너무 배고프고 먹고 살 것이 없어 비참한 생활인데 정부에서는 누구 하나 관심을 갖지 않아 할 수 없이 넓은 땅을 가진 러시아 국경을 넘었다고 한다. 다행히 이들에게 러시아 사람들은 관대했고 입을 옷과 먹을 것을 풍족히 지급해서 그곳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이런 말들이 돌았는지 그 뒤 많은 조선 사람들이 넘어왔다고 한다. 러시아정부는 은근히 조선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게으르고 놀기 좋아하는 러시아 사람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조선인들이 연해주 땅을 개간하고 잘 가꿔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한다. 황무지를 가꾸고 생활이 풍족해지자 조선인들이 소문을 듣고 많은 이주가 이어지고 50여년이 넘게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일본의 조선에 대한 강제 늑약이 체결되고 조선은 주권을 잃고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를 차례로 침략하면서 연해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에게 시련이 다가온 것이었다. 일본군의 간첩이 될 소지가 많다는 판단으로 고려인들을 전부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결정한 것이다.

그러기 전에 고려인 지식인들을 먼저 처형하고 17만 명이 넘는 고려인들을 하루아침에 이주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소수민족의 슬픔을 처절하게 느끼게 한다. 고향에서 죽도록 고생하다 고향을 등졌지만 그래도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어 잠시나마 행복했고 러시아를 제 2의 고향으로 알고 헌신하고 충실했는데 간첩으로 몰릴 상황으로 전개되자 고려인들은 정신 줄을 놓았을 것이다. 동북 아시아에서 일본의 힘이 얼마나 악랄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아시아에 도착한 고려인들은 맨 손으로 땅을 파고 굴속에서 생활 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으며 다시 부활할 수 있었다. 논농사를 짓게 까지 만들었고 목화를 재배해 하얀 들판을 만들었다고 했다. 말하자면 황무지에 꽃을 피우자 러시아는 다시 고려인들을 우대하고 공훈훈장을 내리고 치하했다고 한다. 사실 저절로 한숨이 나오지 않는가 말이다. 필자가 모스크바에 살 때 고려인 중 친한 지인이 하신 말이 있었다. 된장이 너무 먹고 싶어 토마토와 러시아 검정 빵을 같이 뭉개고 으깨 된장으로 생각하고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동안 멍했던 기억이 새롭다.

1881년 소련은 ‘피압박 민족의 복권에 관한 법’을 제정하고 스탈린 시대에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소수 민족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조치를 취해서 고려인 강제 이주도 문서들이 공개되었다. 그러자 고려인 학자들은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관련 문서들을 찾아 동분서주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들이 찾아 낸 비밀문서들은 강제 이주의 정확한 이유를 포함한 그 시대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어 귀중한 재료가 된다고 한다. 1937년 스탈린 집권시 이행되었던 고려인 강제 이주는 고려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위기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