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 톡톡] 세계의 해독제, 선비

요즘 선비 공부를 좀 하고 있다. 한국의 국사 교과서만 읽었다가 다른 역사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한국의 역사가 꽤 오해 속에 방치되어 있는지 알 텐데, 선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선비하면 보통 조선시대를 떠올린다. 연암 박지원이 만든 작중 선비 남산골 허생부터 이황 이율곡 유성룡 송시열 김정희 정약용 등등. 사군자와 김정희의 ‘세한도’는 단골 메뉴고.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지독하게 공부하는 엘리트 집단, 선비.

그런데 선비의 뿌리는 조선이 아니다. 중국 군자나, 사(士)도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문화사'에서 한국 선비 1호로 단군왕검을 꼽는다. 뜻밖이다. 한영우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도 '미래와 만나는 한국의 선비문화'에서 비슷한 주장을 한다. 고려시대 김부식도 단군왕검을 선인(仙人) 왕검이라고 표현했는데 선인이 바로 선비다. 선(仙)을 해자하면 사람과 산이다. 산에 사는 사람. 그것을 우리는 신비스러운 신선이나 신령과 연결해 생각하지만 문화인류학적 상상력으로 선을 생각하면 달라진다.


고대에 사람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면 지배층은 산에다 터를 잡았을 가능성이 높다. 외부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야 하고 홍수도 피하고 또 평민들을 내려다보는 시각을 확보하려면. 그래서 선인, 산에 사는 사람은 지배층이며 그들이 곧 선비 계층의 핵심을 이룬다. 그들은 당연히 무에 능하고 나름의 통치 철학을 확립한 문무겸전의 엘리트였을 것이다.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 재세이화’가 바로 그들의 통치 철학인 것이다. 이때 홍은 활과 관련된 것으로 그들이 무에 능했을 것임을 해자를 통해서 추측할 수 있다. 넓다, 크다를 뜻하는 한자는 많은데(廣, 洪, 宏, 轟) 홍익인간의 홍(弘)은 ‘활을 쏠 때 나는 큰 소리’의 뜻을 가진 말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그래서 검은 옷을 입고 부족을 수호했던 조의부터 선인, 신선, 화랑 등을 선비 계보의 고대 집단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다가 서서히 유학을 받아들이게 되어 삼한시대의 석학 을파소와 설총, 최치원 등을 낳고 더 시간이 흘러 우리가 아는 조선의 선비로 고착되었을 것이다. 선비는 사(士)가 아니다. 사는 고대 중국에서 왕, 제후, 경, 대부, 사, 평민의 직계에 있는 부류로 벼슬로 일을 맡는 사(仕)와 관련된 말이다.

선비는 잘 알든 잘 모르든 한국을 대표하는 그룹인데 이렇게 국가를 대표하는 집단들로 외국에는 누가 있을까? 나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영국의 신사(Gentleman), 유럽의 기사(Knight), 중국의 군자, 일본의 사무라이, 미국의 카우보이 등이 떠오른다. “소나 치는 목동인 카우보이가 어떻게 동양의 이상적 인간인 군자와 같은 격을 가지냐?”고 흥분하지 마시고 그냥 그 나라 하면 떠오르는 대표 인간 캐릭터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들은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말만 들어도 그들에 대한 특정한 연상을 떠올리게 되는데, 아쉽게도 선비는 아직 그렇지 않다.


한국에 대해서 핵폭탄의 김정일이나 붉은 악마, 김연아, 태권도, K-POP 아이돌을 떠올리는 세계인들은 있어도 한국 5천년을 지탱해온 배후의 힘, 선비를 떠올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국가브랜드위원회 등은 좀 더 분발했어야 했다.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의 저자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는 선비가 자기 수양에 지극하고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실천 그리고 평화주의자임을 들어 선비를 현대에도 통할 멋진 캐릭터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처럼 선비는 지독하게 형설지공으로 공부하는 게 특징인데 그들 공부의 목적은 세상을 다스리거나(修己治人), 단군의 건국 이상처럼 홍익인간(弘益人間)하는 것이다.

공부를 하되 목표가 고작 시험과 기업 입사에만 있는 요즘에, 세상을 이롭게 함을 향한 선비 공부가 필요한 지금이 아닐런지. 그래서 선비는 이 시대의 해독제며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멋진 캐릭터가 아닐 런지. 일본이 포장해서 잘 팔아먹은 사무라이 정도는 그냥 수하 졸개로 부릴 그런.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