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선의 컬처톡톡] 금광 클럽

4달 전 조금 쑥스럽긴 하지만 독서 클럽에 가입했다. 10여명 정도 되는 좋은 분들과 한다고 해서 가입했다. 매달 한 번 평일 저녁에 모여서 그달의 선정 도서를 읽고 토론하고 세상 이야기도 나눈다. 다양한 분야의 분들하고 만나 그 분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또한 즐거움이다.

그간 읽은 책은 ‘문화 상상력으로 비상하라’, ‘마음의 미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등이다. 특히 마지막 책은 미국 교육학 교수가 쓴 것으로 처음에는 청소년용이 아닌가 싶었는데 내용을 곱씹어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책의 원래 제목은 Path to Purpose. 풀자면 목적으로 가는 길 정도 될 것이다. 저자는 최근 미국의 청소년들이 2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목적을 잃고 그날그날 살아가는 현실을 다룬다. 70% 이상의 학생들이 공부는 하지만 왜 하는지도 모르고 스펙을 쌓지만 왜 하는지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책이 배경으로 한 사회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정도로 한국도 거의 비슷하다. 한국에서도 목적은 이미 녹슨 지 오래된 청동 같은 용어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너는 공부의 목적이 뭐라고 생각하니?”를 물어보지도 않고 기업 경영자가 “우리 회사의 기업 목적은 무엇이다.”를 잘 말해주지도 않는다. 살기 피곤하다고 한숨짓는 젊은 층에 위안을 주는 방송은 '먹방', '쿡방'뿐이고, 지식인들은 지성의 도끼를 들어야 함에도 사탕 같은 힐링 타령만 늘어놓는다. 이 원인 분석은 현명한 독자 여러분에게 맡겨놓겠다. 그런데 과연 목적이 무엇일까?

목적을 정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데 책에서 말하는 정의는 인상적이다. 저자가 신중하게 제시하는 목적은 ‘자신에게 의미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넘어선 세상을 위해 중대한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한 안정적이고 일반화된 의도’다. 독자님들은 한 번 더 이 정의를 꼭꼭 씹어보면서 음미해보기 바란다.

이 정의는 두 가지가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자신을 넘어선 세상을 위해란 대목이다. 어떤 사람은 의아해 할 지도 모르겠다. 목적의 정의에 왜 ‘자신을 넘어선 세상을 위해’가 들어가느냐고 말이다. 그러나 사람은 나보다 소중한 것이 있을 때 진보하는 법이니 나를 넘어선 세상을 위해 사는 것은 꼭 필요하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토마스 홉스가 주장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처럼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의는 사실 꽤 파격적이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게 정의의 마지막에 있는 일반화된 의도라는 부분이다. 히틀러나 테러리스트, 연쇄살인범, 에서 전당포 노인을 살해한 라스콜리니코프 등도 자신을 넘어 세상을 위해 그런 위대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반화된’ 이란 정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그런 수단의 것들이 일반화의 의미다. ‘특수한’은 주관적이고 때로 위험할 수 있다.

이 책은 그 후 내게 가끔이나마 목적이란 말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를 묻지 않는 것이 이 시대의 특징 중 하나지만 목적 없는 삶은 북극성 없는 사막의 밤과 같을 것이다.

나는 2주 전에 칼럼 ‘즐거운 중독’에서 독서 5락을 말했었다. 책을 읽는 것은 결국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다. 독서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겠지만, 인류의 지성이 용광로처럼 들끓는 독서를 통하지 않고서 뜨겁게 목적의 삶을 사는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책을 개인적으로 읽기 어렵다면 조금 쑥스럽고 짐스러워도 독서클럽을 만들어보기 바란다. 독서클럽을 금광클럽이라고 생각해보라. 책에서 금을 캐는 북 마이닝 (Book Mining) 클럽. 나는 한 책에서 최소한 금 한 덩어리는 캤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독서가 즐거운 중독일 수밖에.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