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특이했던 “까무날나야” 아파트

눈이 시리게 청명하던 가을 날씨가 끝나고 매연이 하늘을 뒤덮더니 이제는 초겨울 날씨로 돌입했다. 바람이 차갑지만 아직은 상쾌하다. 그러나 슬며시 옷깃을 올리고 머플러를 둘러야 목이 따듯해서 온 몸의 한기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지면 하루 일과를 끝내고 따듯한 집으로 빨리 발길을 돌리고 싶은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 라고 배워왔고 입고 먹고 자는 곳이 필수적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예전에는 입고 먹는 것이 더 우선적일 수 있었으나 지금은 자는 곳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한국에서도 전세난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주거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보통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가격상승이다.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집을 가지지 못한 어지간한 서민들의 삶은 어떨까 하는 마음이 앞선다.

러시아에는 다양한 주택이 있다. 필자 살았던 시절에는 공산주의가 막 무너진 시기였기 때문에 특별한 정부 요인이나 큰 국영회사에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이 사는 곳을 제외하고는 대개 비슷비슷하게 사는 것 같았다. 모스크바 같은 대도시에는 아파트도 많았지만 지방 도시를 가면 목재와 벽돌로 지은 단독주택도 많았다.

필자의 눈에 특이하게 보였던 것은 아파트 평수가 그리 크지 않았고 나무가 많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참 인색하게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처럼 거실과 방 몇 개가 아니라 러시아에서는 거실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큰 방으로 합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거실에도 대개 접는 침대를 이용해 소파와 침대를 겸하며 사용하고 있었다. 지금은 신축 아파트들이 많이 건축되었고 단독주택도 많이 지었는데 자본주의의 산물처럼 크고 넓게 짓는 것 같았다. 필자가 한국에 나올 때 쯤은 별장 크기가 초등학교 정도의 크기도 볼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의 집 내부는 건설사나 시공사가 인테리어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덩그란히 건물만 지어놓으면 주인이 내부 장식을 다 책임져야 한다. 잘 사는 사람들의 집은 어마어마하게 화려하고 좋은 구역에 있지만 평범한 서민들은 고만고만하게 살고 있다.

필자가 막 러시아에 갔을 때 특이한 형식의 아파트가 있었는데 바로 “까무날나야 아파트”였다. “까무날나야 아파트”는 러시아 서민들보다 조금 더 어려운 형편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체 아파트였다. 한 층에 3-4개 정도의 방들이 한 공간에 있고 방 하나에 한 가구가 살면서 공동으로 화장실과 부엌을 사용하였는데 필자가 한국에서 모스크바로 갔을 때만 해도 그런 제도의 아파트를 본 일이 없어서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 아파트는 그야말로 공산주의 시대의 산물로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 뒤, 시간이 흐르면서 ‘까무날나야 아파트“를 통째로 사버리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재빠르게 돈을 벌거나 어디선가 큰 돈이 생긴 사람들이 방들을 다 사버리고 그곳에 살던 노동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집을 산 사람은 벽을 다 헐어내고 큰 거실을 만들고 멋진 대리석으로 된 부엌과 색감도 예쁜 타일로 화장실을 만들어 내는 기적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유있고 번듯하게 사는 것을 보았다.

모스크바 시내 아파트나 집들은 유럽식으로 지어 아주 좋았고 내부 장식도 고급스러웠다. 기격도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필자가 가보았던 시내 고급 아파트는 거실에 그랜드 피아노 두 대를 놓고도 공간이 많이 남았으며 식당도 거실과 같은 크기여서 깜짝 놀란 일이 있었다. 옛 소련 시대에도 이렇게 차별이 심하게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인간을 억누르거나 통제를 해도 감춰져있는 본성이나 욕망은 절대 사그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