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라의 초콜릿박스] 모딜리아니의 눈동자

어릴 적 내 짝꿍은 쉬는 시간이면 늘 그림을 그렸는데 주제는 언제나 여자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친구는 눈코입을 그리지 않았다. 언제나 빈 얼굴이었다. 있어야 할 곳에 존재하지 않는 눈코입. 짝꿍은 혼자 있는 걸 좋아했고 밤하늘을 동경했다. 친구는 일찍이 유학을 갔고 우리는 오랜 시간 만나지 못했다. 이후 가끔씩 그 그림들이 떠올랐다. 주로 쓸쓸할 때, 세상과 섞이지 못할 때였던 것 같다. 내 안으로 파고들어 세상과 단절하고 싶을 때. 어쩌면 그때 그 친구는 그때의 나처럼 세상을 보기도, 세상과 말을 섞기도 싫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눈도 코도 입도 존재하지 않는 그림의 모습처럼.

“내가 당신의 영혼을 알 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릴 것이다.” 모딜리아니가 남긴 말이다. 모딜리아니는 대부분의 인물화에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다. 검은색, 또는 회색빛으로 가득 채워진, 마치 허공을, 아니 허공 넘어 그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 텅 빈 눈.

모딜리아니는 마약과 술, 그리고 여자에 빠져 살았다. 이상과 달리 그는 가난한 무명 화가였다. 꿈과 현실은 너무도 동떨어져있었다. 그는 인정받지 못했고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한줄기 빛처럼 잔느가 나타난다. 잔느는 모딜리아니에게 희망과 구원이었다. 그녀는 모딜리아니의 영감이 되었고 그는 그녀를 그리고 또 그렸다.


모딜리아니는 36년이라는 짧은 생을 마치기 전 자화상을 남긴다. 그의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텅 비어있다. 자신의 영혼조차 보지 못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잔느의 눈에는 눈동자를 채워 넣는다. 모딜리아니가 죽자 자신의 몸을 던졌을 만큼 절절했던 그녀의 사랑을, 그녀의 영혼을 모딜리아니는 마침내 알아보았던 것일까? 천국에서도 모델이 되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는 듯 잔느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지 이틀 만에 뱃속의 아이와 함께 6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그의 뒤를 따랐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비사실이 아닌 무의식이라는 인류의 본능에 대한 신비다’라는 말을 남긴 모딜리아니. 사랑보다 더 본능적이고 신비로운 것이 있을까? 모딜리아니는 어쩌면 죽기 전 잔느에게서 그 해답을 찾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힘든 삶을 살았던 그의 작품은 얼마 전 1억7040만 달러로 경매 시장에서 두 번째 비싼 금액으로 낙찰되는 기록을 세웠다. 그토록 위대함을 추구했던 모딜리아니의 열망이, 그의 노력이 더욱 애닯게 느껴지는 건 죽음으로 갈린 시간의 안타까움 때문일 테다.


얼굴 없는 그림을 그리던 내 친구와 얼마 전 연락이 닿았다. 현재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구호단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