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플랫폼] 참여와 관찰, 과거를 대하는 두 가지 시선

1.
연극의 1차적 수용 방식은 ‘보는 것’이다.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대 위의 전체적 풍경을, 이어 극을 진행할 인물들을 보게 된다. 여기까지 관객들의 시각적 행위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관객은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차근차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관객의 시선에 현재적 상황과 가치가 포착되면, 연극은 관객들에게 운동 혹은 참여란 미션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김옥란 평론가의 언급처럼 동시대의 연극은 촛불집회가 일어났던 2008년을 기점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정치극, 사회극, 사회참여극 등은 지금의 연극계에서 낯선 표현들이 아니다. 정치성이 거세된 그간의 실험적 이미지들은 무대 위에서 흐릿해졌고, 그 자리에 사회를 향한 ‘부정과 저항’의 움직임들이 채워졌다. 관객은 더 이상 무대 위의 상황을 목도만 하기에는 곤란한 입장이 되었고, 극장 밖에서의 실천을 요구받기 시작했다. 극장 밖 세상이 지극히 폭력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극 환도열차(장우재 작·연출)의 한 장면. /사진제공=얘술의전당

2.
현재의 오염된 사회를 무대화함에 있어 과잉되고 초과된 제작 주체의 의식과 그 표현 방식은 우려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작품들에서 요구하는 능동과 참여는 종종 불쾌감과 거부감마저 들게 한다. 결과, 관람 행위와 극장 밖 운동은 중단되고 무대 위의 유의미한 상황들은 유감스럽게도 관객의 시야 밖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이러한 우려를 비껴가는 데 있어 적절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것이 역사적 현장을 무대 안으로 끌고 오는 것이다. 관객들은 여전히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역사 속 폭력의 순간들을, 현재와 맞닿아 있는 그때의 문제들을 ‘과거/극의 시간’과 ‘현재/관극의 시간’이란 낙차 덕분에 비판적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된다. 현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부패, 그 기원을 한국전쟁 이후로 설정한 '환도열차'(장우재 작·연출)의 시작을 환기해보자. 등장인물들은 객석의 통로를 가로질러 무대로 향한다. 이 단순한 연극적 연출이 관객과 등장인물의 시각을 일치시켰고, 과거의 부패를 현재로까지 확장시켰다. 지속적으로 객석을 침범해 오는 배우들의 동선에 관객은 더 이상 관람자의 태도만을 취할 수 없게 되었다. 배우의 일원으로서 대한민국의 부패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울릉도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상처꽃-울릉도1974'(양정순 작, 김수진 연출)의 시작 또한 이와 비슷하다. 이러한 작품들은 날 것의 거칠고 과잉된 발언 대신, 이러한 연극적 연출을 시도함으로써 관객을 ‘보는 자’가 아닌, 과거로부터 이어온 현재의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실천할 ‘참여자’로서 위치시킨다. 물론 이러한 동선 및 연출이 신선한 것은 아니다. 연극 무대에서 왕왕 보곤 하는 표현 방식이다. 이러한 익숙한 표현 방식을 비껴가듯 과거와 현재의 접속을 끊임없이 시도한 작품 중 관객을 ‘관찰자’의 위치로만 설정한 작품이 올 상반기 무대에 올랐다.

연극 '이영녀'(김우진 작, 박정희 연출)의 한 장면. /사진제공=국립극단

3.
김우진 원작 '이영녀'(감우진 작, 박정희 연출)는 1924, 25년의 목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연출은 이 시공간을 현재의 박물관 창고로 옮겨놓았다. 현재로 옮겨온 당시의 인물과 배경, 소품 등은 박물관 전시장이 아닌 창고에 너저분히 흩어져있다. 관객들은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내레이터 설명을 들으며 이번 공연을 통해 처음으로 개방된 박물관 창고에서 이영녀를, 그녀가 살았던 과거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박제된 인물들이 움직인다. 본격적으로 관개들의 관찰이 시작된다. 무대 위 모든 것이 남루하고 지저분하고 궁색하기에 그 가치를 인정받기란 좀처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서로에 대한 애정은 부재하고 착취와 폭력, 음해들만이 난무하다.

착취의 구조를 자세히 보니, 착취 너머에 자본가와 당국이 존재한다. 심지어 그들은 빠른 속도로 가난한 자들을 이용하여 부와 권력을 축척한다. 못 가진 자들은 어느 순간 가진 자들의 속도를 놓치고 말았다. 1막에서 인물들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2막으로 넘어오면서 순간순간 정지되고, 급기야 이들은 3막에서 가진 자의 착취의 속도를 이기지 못해 느릿느릿해져 버렸다. 영원한 정지의 순간이 머지않아 보인다.


오늘날의 관객은 '이영녀'를 통해 1920년대 박제품들을 본다.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우리들 또한 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그리고 도태되지 않기 위해, 숨 가쁘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이 변화 과정에서 여전히 권력의 횡포와 착취 구조는 자신의 입장을 공고히 한다. 아, 가만 보니 1920년대와 2015년이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이들을 관찰하는 우리들 또한 현재 박제되어 가는 중일 수도, 그리고 언젠가 그들처럼 박물관 창고에 용도 폐기되어 먼 미래의 누군가가 관찰할지 모른다. 결국 우리가 관찰한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관찰한 셈이다. 그리고 이 문제의 딜레마는 박제화를 막기 위해 이 부조리한 사회 구조에 흡수되는 것도 옳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관찰의 끝은 꽉 막힌 어두운 공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