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함은 정말 '토정비결'을 썼을까?

드라마 '옥중화'에는 톡톡 튀는 감초 역할을 하며 주인공 못지않게 시선을 끄는 역사인물들이 등장한다. 옥녀의 스승으로 나오는 이지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이지함은 오늘날 '토정비결'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한국인이라면 그의 이름은 몰라도 '토정비결'만큼은 들어봤을 것이다. 길흉화복에 관심 많은 우리네 정서상 연초에 재미삼아 보는 이 새해 운세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게다가 이지함의 호 '토정(土亭)'을 전면에 내세우기에 그럴듯하기까지 하다. 명종-선조 때 학문과 덕행으로 이름 높았던 학자의 유작이라니 왠지 신뢰가 간다.

그렇다면 이지함은 정말 '토정비결'을 썼을까? '토정비결'을 보는 풍속이 세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16세기를 살다간 이지함이 저자라는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때문에 그가 실제로 썼다기보다는 '주역'에서 파생된 운세법을 책으로 묶으면서 '토정'이라는 간판을 달았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물론 아무나 간판이 될 수는 없다. 이지함인 데는 이유가 있다.

이지함의 행적을 톺아보면 기이하고 신비로운 면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무쇠로 된 관을 머리에 쓰고 다니다가 밥 지을 때는 벗어서 밥솥으로 썼는데 누가 손가락질을 하든 말든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지함이 근본 없는 선비는 아니었다. 그는 도학자 서경덕의 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당시 사대부들이 우러러보던 명문 학통에 속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지함의 공부는 사서오경 등 유가 경전에만 편중되지 않았다. 역사, 제자백가뿐 아니라 선비가 천시하는 천문, 지리, 의술, 점술까지 두루 넘나들었다. 이렇게 폭넓은 공부 덕분인지 그에게는 특별한 안목이 있었다. "이지함은 사람들을 관찰할 때 출세와 불우, 길함과 흉함을 미리 알아맞히곤 했는데 지인들도 그가 어떻게 앞일을 내다보는지 몰랐다." (선조수정실록)


그 안목으로 이지함은 처가에 닥친 큰 화도 예측해냈다. 고려시대 유학자 목은 이색의 7대손인 그는 명문가 출신답게 왕실 종친인 이정랑의 딸과 혼인하고 충주의 처가 근처에서 살았다. 장인에게 액운이 있음을 꿰뚫어본 것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던 1549년이었다. 이지함이 아내와 함께 고향 보령으로 도망친 다음 날 이정랑은 역모에 연루되어 결국 능지처참을 당한다.

이때부터 이지함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역적 수괴의 딸을 아내로 뒀기에 관직은 꿈도 꾸지 못했다. 명종 대에 그는 팔도를 떠돌아다니면서 처자식을 먹여살릴 생업을 강구했다. 몸소 섬에서 키운 박으로 바가지를 만들어 팔기도 했고, 소금을 굽거나 물고기를 잡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렇게 백성과 함께 땀 흘리다 보니 자연스레 그네들의 애환도 가슴에 담았을 터.

1570년 선조의 명으로 처가의 역적 낙인이 지워지자 이지함은 행실이 뛰어난 선비로 천거되어 나이 50줄에 목민관의 길을 걷는다. 포천현감 시절 올린 상소에는 20여 년을 방랑하며 터득한 생업의 지혜가 번뜩인다. 그는 육지와 바다의 자원을 적극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광산, 염전 등의 개발권한을 포천같이 가난한 지역에 주어 백성 스스로 민생고를 해결하도록 돕자는 방안이었다.

그러나 뜬구름 잡는 공론이 판을 치던 선조의 조정에서 시대를 앞서간 이지함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물러설 그이가 아니었다. 1578년생의 마지막 해에 아산현감이 된 그는 유민들이 걸식하는 걸 보고 큰 집을 지어 수용했다. '걸인청'이라 부른 그곳에서 수공업과 장사를 가르쳐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한 것.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기록된 수령 이지함의 선정이다.

이지함의 삶은 부정부패로 민생이 거덜 난 19세기에 재조명된 것으로 보인다. 시름 속에 살던 백성은 그가 남겼다는 '토정비결'을 보며 작은 위안을 얻었다. 직접 썼든 호만 빌렸든 무슨 상관인가. '북쪽에서 귀인을 만난다'거나 '실물수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그 비결들은 예나 지금이나 백성에게 희망 한 스푼이다. 백성의 마음에 희망을 심어주려 한 이지함의 인생과 닮았다.